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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자 유명론 V [허구주의]

형이상학적 찐따 2017.02.08 15:21

극단적 유명론austere nominalism메타언어적 유명론metalinguistic nominalism, 트롭 이론trope theory은 모두 얼핏 보편자의 존재를 암시하는 듯한 표현들을 담은 문장을 그렇지 않은 문장으로 번역할 수 있으며, 그러면서도 이 문장들이 왜 참일 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최근 이들과는 구분되는 또 다른 유명론적 입장이 대두되고 있다. 바로 허구주의fictionalism다.[각주:1]

허구주의는

(1) 용기는 도덕적 덕이다Courage is a moral virtue.

(2) 빨강은 색상이다Red is a color.

등의 문장들은 문자 그대로literally 볼 때 거짓이라고 말한다. 보편자를 상정하지 않고도 이것들이 참이라는 걸 보이기 위해 복잡한 번역을 거칠 필요도 없다. 이 문장들은 그저

(3) 셜록 홈즈는 탐정이다Sherlock Holmes is a detective.

와 같다는 것이다. 이건 당연히 거짓이다. 셜록 홈즈라는 사람은 없으니까.[각주:2]

하지만 우리는 이 문장을 실제로 내뱉기도 한다. 왜? 특정한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3)은

(3a)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의 소설 『셜록 홈즈』 에서 셜록 홈즈는 탐정이다.

를 줄인 것이다. 허구주의는 (1)과 (2)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거짓이다. 하지만 특정한 맥락 아래에서는 참이 될 수 있다. 그 문맥이 바로 실재론realism이다. 실재론자들이 제시하는 이야기의 맥락에 비추어 보면 위 문장이 참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참신한 견해이긴 하다. 그런데 허구주의는 문제를 너무 쉽게 해결하려는 듯 보인다. 보편자를 상정하는 듯 보이는 언어적 표현들을 문제 삼는 다른 유명론자들에게 그 표현들은 그저 허구일 뿐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으로 모든 논의를 끝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보편자 논쟁이 이렇게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일까? 하지만 추상적 존재자를 지칭하는 듯한 표현을 담은 문장을 참으로 만들어주는 맥락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는 건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닐 것 같은데?

또 하나의 문제는 (1)과 (2)를 (3)과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3)을 보면 우리는 그 배후의 맥락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우리는 (3)이 허구적 주장임을 알아차리고, 그것이 어떤 허구적 이야기를 배경으로 삼아 제시되는 주장인지도 안다. 그러니 굳이 아서 코난 도일과 소설 『셜록 홈즈』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고도 (3)을 말하고 또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1)과 (2)도 그렇게 받아들이는가? 사실은 거짓이지만, 그것을 참으로 만들어주는 어떤 허구적 이야기가 있다고? 글쎄?

  1. Hartry Field, "Fictionalism, Epistemology, and Modality" in 『Realism, Mathematics, and Modalit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9); and John P. Burgess & Gideon Rosen, 『A Subject With No Object: Strategies for Nominalistic Interpretation of Mathematic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본문으로]
  2. 문장의 구성 요소가 지시체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 반드시 그 문장이 거짓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가령 고틀로프 프레게Gottlob Frege는 이 문장이 진리값을 갖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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