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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현상

<샤를리 에브도> 총격 테러범들을 대하며

동경 TOKYO 2015. 1. 14. 16:21

[이미지 출처]

현지 시각으로 2015년 1월 7일 오전 11시 30분경 프랑스 파리에 소재한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의 본사에 2명의 테러범들이 들이닥쳐 총기를 난사해 12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다. (물론 부상자도 발생했다.) 이들은 범행 이후 "알라는 위대하다"와 "우리가 예언자 무함마드의 복수를 했다" 등의 구호를 외치고는 현장을 떠났다. 당연히 난리가 났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의 정상들은 물론이고 반기문 UN사무총장과 교황청 그리고 세계 곳곳의 시민들까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테러를 강력히 규탄했다. [관련 기사 #1 #2 #3 #4 #5] <샤를리 에브도>가 도가 지나친 만평을 잇따라 세상에 내놓으면서 갈등을 유발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폭력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압하려한 테러는 어떤 식으로든 용납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더 큰 것 같다.

나도 이런 식의 테러는 근절되어야 하며 - 일부는 이미 사살되었지만 - 범죄자들은 호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 테러범들에 대한 반응이 이렇게 단순해도 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일단 이번 사건의 테러범들은 대다수의 범죄자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대개 범죄자들은 법과 도덕의 정당성을 최소한 어느 정도는 인정한다. 일례로 얼마전 살인을 저지른 박춘봉은 - 정확히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 "미안"하다며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 만약 박춘봉이 이 사회의 법과 도덕이 갖는 정당성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너희들이 아무리 내가 나쁜 놈이라고 떠들어봤자 나는 당당하다!'고 소리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런데 <샤를리 에브도> 본사를 공격한 테러범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당당했다.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예언자 무함마드의 복수를" 한 것이기 때문에. 최소한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랬다. 이를테면 박춘봉은 법과 도덕의 틀 안에 있지만 그것을 따르지 않았다. 반면에 이 테러범들은 법과 도덕의 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그들에게 인권이니 표현의 자유니 하는 소리를 늘어놓아봤자 소 귀에 경 읽기 아닐까?

테러범들이 문명의 울타리를 벗어난 야만인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들에겐 그들만의 법과 도덕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테러범들은 거꾸로 이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 '저들은 위대한 알라 신의 품에서 완전히 벗어나있다. 온건한 방식으로 교정을 하면 좋겠지만 그들은 이슬람의 교리를 완전히 부정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에게 코란이니 예언자니 하는 소리를 늘어놓아봤자 소 귀에 경 읽기 아닐까?' 그렇다고 그들의 법과 도덕을 옹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이 세계에 서로 조화될 수 없거나 최소한 그렇게 되기가 굉장히 어려운 체계들이 함께 존재하는 경우에 도대체 무슨 근거로 어떤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묻고자 하는 것이다. 아마 혹자는 - 특히 무신론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면 - 이슬람의 교리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신이나 예언 같은 것들은 모두 비과학적인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은 얼마나 탄탄한 지반 위에 서 있는지? 인권 사상은 어떤가? 누군가가 "인간은 왜 인권을 갖고 있는 거야?"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 텐가? 인간은 오로지 인간이기 때문에 인권을 갖는다고? 그럼 참치는 오로지 참치이기 때문에 참치권을 갖는다고도 말해보시지? 하루에 다섯 번씩 실체도 없는 신을 향해 기도하는 게 순전한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가? UN이 엄청난 자원을 소모해가며 찍어낸 결의안이니 선언문이니 하는 것들은 무슨 쓸모가 그렇게 많은가? UN이 불필요한 조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이런 주장들에 찬성하거나 반대하기는 쉽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이 옳거나 그르다는 것을 증명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인권을 무엇으로 근거지울 것인가? 인간에게만 귀속시킬 수 있는 본질? 그게 도대체 뭔데? 혹은 그런 게 있기나 한가? 만일 그것이 초월적인 성질의 것이라면 그것에 대한 믿음 역시 최소한 어떤 의미에서는 종교적이지 않은가? 꼭 긴 머리에 수염을 기른 신이 있어야만 종교가 성립하는 건 아니다. 또 살인은 독립된 실체를 제거하는 것인가? 어쩌면 그저 이 세계라는 유일한 실체에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경미한 변화를 주는 것에 불과하지는 않은지? 그렇다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전체로서의 세계라는 거대한 하나의 체계를 유지하는 데에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으로 간주될 여지도 있다. 유기체가 살아가기 위해 세포를 갈아치우듯이 말이다. 이 지점에서 인권 사상과 손을 맞잡고 있는 인간중심주의는 이를테면 생태계에 대하여 때로 혹은 언제나 지독하게 폭력적이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자문해 보는 것도 좋겠다. 이 세계 전체에 비하면 우리는 그저 - 제거해버려도 별 문제 없는 혹은 경우에 따라 제거해야만 하는 - 하나의 세포 정도에 불과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겠는가? 세계라는 거대한 유기체 - 그것이 알라의 성전이든 생태계eco-system든 무엇이든 - 를 위해서 상한 세포 몇 개쯤은 버려도 될뿐만 아니라 버려야 한다는 주장을 효과적으로 논반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테러범들에게는 톨레랑스가 없다고? 톨레랑스? 지난 여름에 우리는 모기들에게 톨레랑스를 베풀었나? 우리가 말하는 톨레랑스는 이렇게 제한적이다. 테러범들에게 톨레랑스가 전혀 없었을까? 다만 아주 제한적인 것은 아니었는지? 정도의 차이를 빼고 나면 우리의 톨레랑스는 그들의 것과 도대체 얼마나 다른가? 고민해 볼 일이다. 어떤가? 우선 이런 질문들은 우리에게 아주 낯설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 질문에 콧방귀를 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질문들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당연하다. 제대로 대답을 못하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이 부서지고 말테니까. 그래서 우리는 테러범들을 때려 잡는다. 이런 공격적인 질문들을 되받아치려 한다. 하지만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테러범들을 소탕하는 것은 차라리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들을 제거하는 것에 대해 정말로 당당할 수 있는지? 테러범들이 잘했다는 말이 아니다. 기실 이 질문은 끔찍한 테러를 저지르고도 당당했던 테러범들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우리 자신을 향한 것이다. 우리가 정말로 저들 테러범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면 - 테러범들을 비판하고 있는 우리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으려면 - 우리는 이 낯설고 불편한 질문들을 마주해야 한다. 정말로 그렇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면, 그땐 어쩔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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