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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도덕 형이상학 정초』 읽기 II: 제1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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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도덕 형이상학 정초』 읽기 II: 제1절

동경 TOKYO 2015. 6. 11. 20:09

"선의지good will를 제외하고서는 이 세상에서, 혹은 그 너머에서라도, 무제한적으로 좋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생각 할 수 없다"(4:393).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제1절의 목표는 "평범한 인식common recognition을 분석하여 그것의 최상 원칙supreme principle을 규명하는 것"(4:392)이다. 그래서 칸트는 도덕적으로 좋은 행위는 모두 특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평범한 인식"에서 출발한다진정으로 옳은 이유에서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은 우리가 유일하게 "무조건적 가치unconditional worth"를 부여하는 선의지 - 도덕적 실천 이성 - 를 발현한다. 우리는 선의지를 반영하는 행위를 통해 이 특별한 가치를 실현시킨다.

선의지가 지니는 가치는 그것이 다른 것과 맺는 관계와는 완전히 독립적이다. 덕분에 선의지는 모든 가능세계에서 가치를 지니며 그 가치는 외부의 조건이나 맥락에 의해 변하지 않는다. 칸트는 이렇게 내재적 가치intrinsic value를 가지는 것은 오직 선의지밖에 없다고 말한다. 뛰어난 천재도 자신의 재능을 활용해 악랄한 짓을 저지를 수 있다. 천재성은 오로지 옳은 방식으로 사용될 때에만 가치를 지닌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당장 주변에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행복만을 챙기는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반면에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뛰어드는 행위는 분명 가치를 지닌다. 설사 그 사람을 구하는 데 실패하거나 심지어 자기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게 되더라도 말이다. 행위의 결과는 무관하다. 결과가 좋지 않다고 그 가치가 깎이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이런 행위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행위자가 그 행위를 하도록 만든 동기motive 때문이다. "의무의 동기로부터from the motive of duty" 나온 행위는 - 그러니까 선의지를 반영하는 행위는 - 무제한적으로 좋다.

칸트는 행위의 동기를 3가지로 구분한다. 먼저 ①의무의 동기에 따라 행위하는 사람[dutiful person]은 다른 사람을 구해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물에 뛰어든다. 반면에 경향심에 따른 행위들도 있는데 ②직접적 경향심immediate inclination에 따른 행위는 그 행위를 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혹은 그 행위를 하는 것 자체를 목적purpose으로 삼고 하는 행위다. 또 다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그 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그 행위가 "또 다른 경향심을 통해" 촉발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행위가 도덕적 가치moral worth를 지니는 것은 오로지 ①의 경우뿐이다.

③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면 그 사람이 나에게 돈을 쥐어주리라는 생각에서 물에 뛰어드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때 행위자의 목적은 돈이다. 친구를 구해주는 것은 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②는 자연적으로 동정심이 많은 사람[naturally sympathetic person]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경우다. 이런 사람은 누군가를 구해줄 때 그 사람을 돕는 것 외의 다른 목적은 없다. 다만 누군가를 구해주는 것이 즐거울 뿐이다. 돈이 아니라 사람을 구하는 것이 그 자체로 목적임에도 불구하고 칸트에 따르면 이 경우에도 진정한 도덕적 가치가 실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만약 이 사람에게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욕망이 없었더라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행위가 단순히 의무에 순응conform한다고 해서 도덕적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① 역시 사람을 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둔다는 점에서는 ②와 다르지 않다. 다만 행위의 동기가 그 사람을 돕는 것이 옳다는 인식에서 온다는 점에 다를 뿐이다. 칸트에게서는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하다. ②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도덕적 가치가 ①에서 실현되는 것은 두 행위가 다른 목적을 지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동기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 좋은 행위는 단순히 의무와 일치하는 행위가 아니라 의무의 동기에서 비롯되는 행위다.[각주:1]


그런데 동정심이 많아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이도 충분히 착한 것 같은데 뭐가 부족하다는 걸까? 의무의 동기에 따른 행위가 아니다? 그럼 의무라는 게 도대체 뭘까? 동정심 많은 사람과 의무를 따르는 사람은 같은 행위를 하지만 사실 다른 준칙maxim에 따라 행위한다. 준칙이란 행위의 주관적 원칙subjective principle, 그러니까 행위자가 실제로 행위할 때에 따르는 원칙을 말한다.[각주:2] (모든 합리적 존재가 어떤 행위를 해야 하는지를 규정하는 객관적 원칙objective principle으로서의 (실천practical) 법칙law이나 명령imperative과는 구분된다.) 전자와 후자가 따르는 준칙은 아마 각각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와 "위험에 빠진 사람을 본다면 구한다" 정도가 될 것이다. 두 사람의 행위가 지니는 도덕적 가치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우리로 하여금 행위를 하도록 부추기는 다양한 유인incentives 중에는 욕망과 경향심 또는 도덕적 판단 등이 있다. 그러나 이것들이 직접적으로 의사결정이나 행위를 촉발시키는 것은 아니고 다만 우리가 의사결정을 내릴 때 참고할 수 있는 고려사항considerations를 제공할 따름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특정한 유인에 반응하여 행위하는 것은 곧 그 유인에 따라 행위하는 것을 자신의 준칙으로 삼는 것이 된다.

동정심이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경향심에 따라 행위하는 것을 자신의 준칙으로 삼았다. 말하자면 그는 오로지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욕망 때문에 물에 뛰어들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의 행위가 도덕적 가치를 결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의무에 따르는 사람은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이 도덕적으로 요구require된다는 점을 인식하고서 그렇게 하는 것을 자신의 준칙으로 삼았다. 말하자면 그는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아야 한다는 준칙이 법칙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요구를 표현express·구현embody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칸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이러한 준칙이 법칙의 형식the form of a law을 갖추고 있다고 여긴다.[각주:3] 칸트는 어떤 준칙이 도덕적 요구를 표현한다는 생각 - 그런까 준칙이 법칙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 - 은 그 자체로 그 준칙에 따른 행위를 할 유인이 된다고 말한다. 바로 이 유인이 "법칙에 대한 존경심respect for law"이다.

도덕적으로 좋은 행위가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는 "평범한 인식"에서 출발한 칸트는 이제 중간 결론에 도달했다. 이 특별한 가치란 다름 아니라 그 행위가 법칙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준칙이 법칙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는 - 그 준칙에 따라 행위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요구된다는 - 생각에 따라 움직일 때 우리는 비로소 도덕적으로 옳게 행위하게 된다. 우리가 선의지를 발현하는 것, 그리고 선의지를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이 가치를 획득하는 것 또한 이때다.


리뷰 텍스트

Immanuel Kant, The Groundwork of Metaphysics of Morals, rev. ed., trans. Mary Gregor & Jens Timmerman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2)

Christine M. Korsgaard, "Introduction," in Immanuel Kant, The Groundwork of Metaphysics of Morals, rev. ed., trans. Mary Gregor & Jens Timmerman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2): vii-xxx


더 읽어보면 좋은 텍스트

Barbara Herman, "On the Value of Acting from the Motive of Duty," The Philosophical Review 90(3) (1981): 359-382

Christine M. Korsgaard, "Two Distinctions in Goodness," Philosophical Review 92(2) (1983): 169-196

Christine M. Korsgaard, Creating the Kingdom of End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


  1. 우리가 다른 사람을 구할 때 그 행위가 억지로 혹은 경향심이 전혀 없이 이루어져야만 도덕적 가치가 실현된다는 식으로 읽혀서는 곤란하다. 오로지 의무의 동기에서 비롯된 행위만이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은 그 행위의 바탕에 다른 동기가 있는 경우 그 도덕적 가치가 감소한다는 것을 함축하지 않는다. 의무의 동기와 더불어 경향심에 따라 다른 사람을 구하는 행위도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본문으로]
  2. 행위자가 행위할 때에 혹은 심지어 행위를 하고 나서라도 그 행위의 준칙을 반드시 의식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본문으로]
  3. 아리스토텔레스的 형이상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형식과 질료 사이의 구분이 칸트 윤리학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칸트에 따르면 준칙의 법칙적 성격lawlike character은 준칙의 질료matter가 아니라 형식form에 근거한다. 준칙의 질료에 해당하는 행위와 그 행위의 목적은 준칙의 법칙적 성격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준칙의 법칙적 성격은 다만 준칙의 질료가 조합·배열된 방식 - 다시 말해 준칙의 형식 - 에 따라 결정될 뿐이다. 준칙이 기술하든 행위와 그 목적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모두가 그 준칙이 보편 법칙이 될 것을 의지할 수 있다면 그 준칙은 법칙의 형식을 갖춘 좋은 준칙이 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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