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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의 한정 기술구 이론

동경 TOKYO 2016. 4. 9. 23:37

프레게Gottlob Frege의

논제 4: 고유 명사proper name의 의미론적 값은 그것이 가리키는stand for 대상이다.

에 따르면 고유 명사는 대상을 그 의미론적 값으로 갖는 표현이다. 때문에 고유 명사에는 "아리스토텔레스"나 "셜록 홈즈"와 같은 일상적 명칭ordinary names[각주:1]도 포함되지만 한정 기술구definite descriptions 역시 포함된다. 한정 기술구 역시 대상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한정 기술구란 "이러저러한 것" 혹은 "이러저러한 사람"의 형태를 가진 구절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한국의 왕"이나 "파란색 마스크를 쓴 사내" 또는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 무엇도 지칭하지 않는 고유 명사는 의미론적 값을 결여하며 이러한 고유 명사가 등장하는 문장 역시 그 의미론적 값(=진리값)을 결여한다. 가령 프레게에 따르면

한국의 왕은 대머리다 

라는 문장은 참도 거짓도 아니다. 한국에는 왕이 없기 때문이다. 과연? 그런데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이런 프레게의 설명이 못마땅했다. 도대체가 어떤 문장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 그 뜻을 파악할 수는 있지만 - 그 문장이 참도 거짓도 아니라는 게 대체 무슨 말인가? 그런데 이게 정말 그렇게 이상한가? 참도 거짓도 아닌 그러나 이해 가능한 문장은 정말 있을 수 없나? 러셀은 한정 기술구는 고유 명사가 아니라고 주장함으로써 이 문제를 피해간다. 달리 말하자면 한정 기술구의 의미론적 값은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 한정 기술구의 의미론적 값은 무엇인가?

프레게는 위 문장을 다음과 같이 형식화했을 것이다. [양화 문장의 이해]

Fa

"-는 대머리다"의 술어를 F로 두는 반면 "한국의 왕"을 a로 둔 것. 러셀은 이 같은 방식의 형식화에 반대한다. 문장의 문법적 형식grammatical form은 곧 그 논리적 형식logical form을 오롯이 드러내주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의 왕은 대머리다"라는 문장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1) 한국의 왕인 것이 최소 하나 있다.

(2) 한국의 왕인 것이 최대 하나 있다.

(3) 한국의 왕인 것은 또한 대머리다.

 이제 러셀은 "-는 한국의 왕이다"와 "-는 대머리다"라는 술어들을 각각 F와 G로 두고서 "한국의 왕은 대머리다"라는 문장을 다음과 같이 형식화한다.

(∃x)((Fx&Gx)&(∀y)(Fy→y=x))

이제 "한국의 왕"이라는 표현은 어떤 대상을 의미론적 값으로 갖는 것이 아니라 2차 함수를 의미론적 값으로 갖는 것이 된다. "한국의 왕"은

a

가 아니라

(∃x)((Fx&…x)&(∀y)(Fy→y=x))

로 형식화된다. 프레게는 한정 기술구를 고유 명사로 - 그러니까 대상을 그 의미론적 값으로 갖는 것으로 - 보았지만, 사실 한정 기술구는 2차 함수를 그 의미론적 값으로 갖는 표현이라는 것이. 이렇게 되면 우리는 "한국의 왕은 대머리다"라는 문장이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한국의 왕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이것이 대상 없는 이름의 문제에 대한 러셀의 대응이다.

러셀은 더 나아가서 일상적 명칭들도 실은 "숨겨진disguised 한정 기술구"라고 말한다. "셜록 홈즈의 왼쪽 새끼손가락에는 검푸른 점이 두 개 있다"라는 문장에서 "셜록 홈즈"라는 표현도 기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한정 기술구라는 것. 그러면 셜록 홈즈에 관한 위 문장은 "아서 코난 도일이 쓴 추리 소설의 주인공의 왼쪽 새끼손가락에는 검푸른 점이 두 개 있다" 정도로 풀 수 있을 것이다. 아서 코난 도일이 또 일상적 명칭이긴 하지만 일단 넘어간다… 때문에 이것을 형식화하면

(∃x)((Fx&Gx)&(∀y)(Fy→y=x))

가 된다. 역시 진리값을 가질 수 있는 문장이다. 당연히 거짓.

그런데 한정 기술구와 일상적 명칭이 모두 고유 명사가 아니라면 대체 뭐가 고유 명사인가? 러셀은 오직 "이것"이나 "저것"과 같은 지시적 표현들demonstrative expressions만이 진정한 고유 명사 - 대상을 의미론적 값으로 갖는 표현 - 의 후보군에 오를 수 있다고 말한다. 후보? 그렇다. 심지어 지시절 표현들도 경우에 따라 고유 명사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지시적 표현이 물리적 대상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된다면 그것은 고유 명사라고 볼 수 없다. 가령 "이것"이라고 말하면서 연필을 지칭한다면 "이것"은 사실 숨겨진 한정 기술구다.

오로지 감각소여sense-data, 그러니까 "감각의 대상objects of sense"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할 때에만 지시적 표현은 고유 명사가 될 수 있다. 오직 그럴 때에만 대상 없는 이름의 문제가 일어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감각소여의 존재를 의심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빨강의 시각적 감각소여가 나에게 현상하면 그 감각소여는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은 하얗다"라고 말한다. 당신이 "이것은 하얗다"라고 말하면서 "이것"이라는 말로 당신 스스로가 보고 있는 무언가를 지칭한다면 당신은 "이것"이라는 표현을 고유 명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이것은 하얗다"라고 말할 때 표현하고자 하는 명제를 당신이 이해하려고 든다면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다. (…) "이것"이란 표현 은아주 엄격하게 사용될 때에만, 그러니까 감각의 실제 대상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될 때에만, 실로 고유 명사가 되는 것이다.[각주:2]

그런데 "한국의 왕이 대머리다"라는 문장이 거짓이라면 "한국의 왕은 대머리가 아니다"라는 문장은? 거짓인 문장의 부정문은 참이어야 한다. 하지만 러셀의 한정 기술구 이론에 따르면 이 문장 역시 거짓이다.

(∃x)((Fx&~Gx)&(∀y)(Fy→y=x))

이렇게 형식화하면 확실히 드러난다. 그런데 이는 배중률law of excluded middle에 위배된다. "A는 B다"도 거짓이고 "A는 B가 아니다"도 거짓이니 말이다. 러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범위scope의 개념을 도입한다. 무슨 말일까?

모든 사람은 남자다

(∀x)(Hx→Mx)

는 거짓이다. 여자 사람도 존재하니까. 그러면

모든 사람은 남자가 아니다

(∀x)(Hx→~Mx)

는 참인가? 아니다. 이것도 거짓이다. 어떤 문장과 그 문장의 부정문이 같은 진리값을 가지는 것은 물론 문제다. 하지만 이 경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남자가 아니다"는 애초에 "모든 사람은 남자다"의 논리적 부정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남자다"의 논리적 부정문은

모든 사람이 남자인 것은 아니다

~(∀x)(Hx→Mx)

다. 부정문 연결사가 양화사에 대하여 좁은narrow 범위를 가질 때는 문제가 생기지만 넓은wide 범위를 가질 때 이 문제는 해소된다. 러셀은 부정문 연결사를 이런 방식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왕은 대머리다

(∃x)((Fx&Gx)&(∀y)(Fy→y=x))

의 부정문은

한국의 왕은 대머리가 아니다

(∃x)((Fx&~Gx)&(∀y)(Fy→y=x))

가 아니라

한국의 왕이면서 대머리인 존재가 딱 하나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x)((Fx&Gx)&(∀y)(Fy→y=x))

다.


리뷰 텍스트

Alexander Miller, Philosophy of Logic 2nd ed. (New York: Routledge, 2007), §§2.8-2.9

  1. 언어철학의 맥락 바깥에서 흔히 "고유 명사"라 불리는 것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본문으로]
  2. Bertrand Russell, "The Philosophy of Logical Atomism" in 『Logic and Knowledge』 Robert C. Marsh, ed. (London: Routledge, 1956), p. 20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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