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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험적 우연성과 후험적 필연성?

동경 TOKYO 2016. 4. 19. 18:06

솔 크립키Saul Kripke는 "오늘날 학계에서 진술이 선험적이라는 것과 필연적이라는 것의 개념을 구분하는 사람은 몇몇 있을지는 몰라도 거의 없"[각주:1]다고 지적한다. 그 "오늘날"이 오늘날은 아니지만 아닌 게 아니라 우연성contingency과 필연성necessity은 형이상학적인 개념인 반면에 선험a priori과 후험a posteriori은 인식론적 개념이므로 엄연히 다르다. 어떤 문장의 참이 필연적이냐 우연적이냐는 그 문장이 모든 가능 세계에서 참인지의 여부에 따라 다르다. 다시 말해 세계의 상태에 의해 결정되는 것. 하지만 선험적 참과 후험적 참은 각각 우리가 감각 경험sense-experience과 독립적으로 알 수 있는 것과 감각 경험에 적어도 얼마간 의존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선험적 우연성은 어떤 경우에 성립할 수 있을까? 1 미터는 한때 특정 시각에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백금-이리듐 합금으로 만든 막대(=미터원기metre-rod)의 길이로 규정되었었다. 이때 "t 시점에 미터원기의 길이"라는 한정 기술구는 "1 미터"라는 (고정 지시어rigid designator로서의) 고유 명사proper names와 같은 지시체를 갖는다. 때문에 "시점에 미터원기의 길이는 1 미터다"는 참이다. 물론 다른 가능 세계에서는 t 시점에 미터원기의 길이가 조금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 문장이 필연적으로 참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1 미터를 애초에 이렇게 규정했기 때문에 우리는 감각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도 이 문장이 참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문장은 선험적으로 참이다.

후험적 필연성은? "샛별"과 "개밥바라기"라는 고유 명사는 모두 고정 지시어이므로 (그 지시체가 존재하는) 모든 가능 세계에서 동일한 대상을 지칭한다. 그러므로 "샛별은 개밥바라기다"라는 문장은 필연적으로 참이다. 그렇지만 이 문장이 참임을 알기 위해서는 천문학적 발견이 필요하다. 감각 경험이 필요한 것. 따라서 이 문장은 후험적이지만 필연적으로 참이다.


리뷰 텍스트

Alexander Miller, Philosophy of Logic 2nd ed. (New York: Routledge, 2007), §2.5

  1. Saul Kripke, 『Naming and Necessit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0), p. 3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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