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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이사 예정] 철학, 끄적끄적
『도덕 형이상학 정초』의 제1절은 도덕률에 대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갖고 있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그렇다고 제1절에 드러난 칸트의 논증이 귀납적인 것은 아니다. 칸트는 사람들이 실제로 법칙에 대한 존경심에 따라 행위한다는 관찰로부터 그러한 행위가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는 결론을 귀납적으로 이끌어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제1절의 논증은 만약 어떤 행위가 법칙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라면 그 행위는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는 식의 연역 논증이다. 누군가가 실제로 법칙에 대한 존경심에서 행위하는지의 여부는 윤리학의 탐구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정언 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이 우리의 의지를 다스린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말은 우리가 실제로 정언 명령에 따른다는 것을 보인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합리적..
"선의지good will를 제외하고서는 이 세상에서, 혹은 그 너머에서라도, 무제한적으로 좋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생각 할 수 없다"(4:393).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제1절의 목표는 "평범한 인식common recognition을 분석하여 그것의 최상 원칙supreme principle을 규명하는 것"(4:392)이다. 그래서 칸트는 도덕적으로 좋은 행위는 모두 특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평범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진정으로 옳은 이유에서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은 우리가 유일하게 "무조건적 가치unconditional worth"를 부여하는 선의지 - 도덕적 실천 이성 - 를 발현한다. 우리는 선의지를 반영하는 행위를 통해 이 특별한 가치를 실현시킨다.선의지가 지니는 가치는 그것이 다른 것과 맺는..
칸트가 보기에 이 세계의 합리적 질서란 우리가 경험을 통해 발견하는 것도, 오로지 순수 이성만을 통해 도달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구성하는 것이다.『순수 이성 비판The Critique of Pure Reason』은 바로 이론적인 - 앎을 통한 - 구성 작업의 일환이다. 그럼 실천적인 - 행위를 통한 - 구성 작업은? 의무론적 윤리학의 아빠, 칸트의 『도덕 형이상학 정초The Groundwork of Metaphysics of Morals』를 읽는 것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하기 위해서다.사실 『도덕 형이상학 정초』의 주요 테제들 - (1)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 목적이며 결코 다른 사람에 의해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2) 자기 스스로의 인간성에 대한 존경심은 다른 사람의 인간성..
전쟁 속에서도 우리는 윤리를 말할 수 있을까? 도덕적 고려사항 - 가령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에 관한 문제들 - 은 아예 전쟁에 적용될 수 없다는 식의 허무주의nihilism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면 전쟁 중의 윤리에 대해 말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윤리?나는 전쟁은 (거의) 모든 경우에 정당화될 수 없으며 도덕적으로 그른 것이라는 반전 평화주의antiwar pacifism에 매우 우호적인 편이지만 전쟁은 그냥 빡친다는 이유만으로 시작할 수 있는 그따위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전쟁이 용인될 수 있을만한 상황 - 가령 먼저 군사적인 선제 공격을 받았다든가 - 을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때 우리에게 적용될 도덕은 어떤 모습일까?가령 원자폭탄을 떨어뜨려서 엄청난 수의 민간인을..
I 결과주의와 가치 담지자로서의 사태Consequentialism is basically indifferent to whether a state of affairs consists in what I do, or is produced by what I do (…)p. 93 결과주의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결과가 도래하느냐 뿐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발생한 것인지 그리고 누구에 의한 것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가 죽었다고? 결과주의자가 신경을 쓰는 것은 오로지 그 결과다. 내가 그 사람을 칼로 찔러 죽였는지 아니면 굶어 죽어가는 그에게 밥 사먹을 돈을 보내주지 못해서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없다. 나 때문인지 너 때문인지도 상관없다. 어찌됐든 사람이 죽는 사태state of affairs가 ..
I 결과주의와 평가적 초점결과주의consequentialism는 결과의 좋음 혹은 나쁨을 기준으로 도덕적 평가를 한다. 그런데 무엇에 대한 평가를? 그 평가대상evaluand이 행위act라면 - 행위를 취함으로써 나타나는 결과가 얼마나 좋은지를 평가한다면 - 그것은 행위 결과주의act consequentialism가 된다. 반면 규칙 결과주의rule consequentialism는 행위가 아니라 규칙rule을 직접적인 평가대상으로 삼는다. 최적의 규칙은 물론 최선을 결과를 가져오는 규칙이다. 행위는 (그것이 가져올 결과가 아니라) 바로 이 최적의 규칙에 의거해서 평가된다. 행위 결과주의나 규칙 결과주의나 도덕적 정당화가 좋음good의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들 두 이론은..
브런치 블로그로 글을 옮깁니다brunch.co.kr/@texto/24
나의 주장은 이런 것이다. (…) 자주성sovereignty 혹은 불가침성inviolability은, 그 결과 때문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인권의 도덕률에 의해 표현되는 가장 두드러진 가치다.p. 107토마스 네이글Thomas Nagel은 그가 겪은 한 일화를 들려주며「개인적 권리와 공적 공간Personal Rights and Public Space」라는 논문을 시작한다. 권리rights를 주제로 한 어느 세계 학술 대회에 온 몇몇 나라의 철학자들이 토론을 좀 하더니 투덜거리더라는 것이다. 자기들이 온 나라에는 투표나 종교의 자유도 없는 것은 물론이고 재판도 없이 처벌을 받거나 경찰한테 고문을 받는 일도 비일비재한데, 포르노를 볼 권리 같은 것에 대해 얘기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것 ..
I 생리학적 작용으로서의 도덕 활동생리적으로 말하자면, 그것[노예 도덕]이 일반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자극이 필요하다. -노예 도덕의 활동은 근본적으로 반작용이다. 고귀한 가치 평가 방식에서 사정은 정반대다 : 그것은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성장한다.「도덕의 계보」 제1논문 10절 中니체는 「네 가지 중대한 오류들」에서 기독교와 기존의 도덕률 (그리고 그것들을 근거 짓는 서구의 오랜 형이상학적 전통)이 근본적인 수준에서 심각한 오류들을 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 첫 번째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오류다. 니체는 장수의 비결로 소식을 제안하는 사람을 언급하며 "[그는] 자신의 식단이 그의 긴 수명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신진대사metabolism가 유난히 느리다는 점, 그래서 아주 조금만 섭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