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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논리학 IX: 명제 논리 2 [조건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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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논리학 IX: 명제 논리 2 [조건문]

형이상학적 찐따 2015.01.22 16:58

이 글은 연세대학교 철학과의 선우환 교수님께서 강의하신 논리학 수업 필기를 바탕으로 쓴 것입니다. 작성자 본인의 이해에 따라 소폭 수정하거나 추가한 부분이 있습니다. 실제 강의 내용과 다를 수 있습니다.


I 조건문

"아이유가 MT에 간다면 나도 MT에 간다." 아이유가 MT에 간다는 조건이 충족되면 나도 MT에 간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런 문장을 '조건문conditional' (혹은 '가언문hypothetical')이라고 부른다. '아이유가 MT에 간다'와 '나는 MT에 간다'라는 문장을 각각 p와 q로 두는 경우 위 조건문은 조건문 연결사 →를 활용해 'p→q'로 기호화할 수 있다. (조건문 연결사로는 ⊃가 쓰이기도 한다.) 'If p, then q'라고 읽고 p와 q는 각각 '전건antecedent'과 '후건consequent'이라고 부른다.

조건문 p→q의 진리 조건은 ~(p&~q)의 그것과 동일하다. p이면 q라는 말은 곧 p이면서 동시에 ~q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아이유가 MT에 간다면 나도 MT에 간다"는 "아이유가 MT에 가면서 내가 MT에 가지 않는 그런 상황은 없다"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혹은 '아이유가 MT에 간다'라는 명제가 참이라면 '나는 MT에 간다'는 명제 역시 참이 된다고 이해해도 좋다.) 이러한 조건문의 진리 조건을 진리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p

q

~(p&~q)

p→q

T

T

T

T

T

F

F

F

F

T

T

T

F

F

T

T

참고로 전건과 후건이 반드시 인과적 관계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실은 인과적 관계뿐만 아니라 그 어떤 종류의 관계도 있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완전히 생뚱맞은 문장들을 합쳐서 조건문으로 만들 수도 있다. 가령 "지금 내 가방에 책이 있으면 오바마는 남자다"와 같은 문장도 얼마든지 만들어 질 수 있으며 진리값을 가질 수도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조건문에서 교환법칙은 성립하지 않는다. 내가 MT에 간다고 아이유도 MT에 오겠나? p→q가 참이라고 해서 그것의 '역converse'인 qp까지 참이라는 법은 없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전건이 거짓이라고 해서 꼭 후건이 거짓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pq에서 그것의 '이inverse'인 ~p~q를 이끌어낼 수는 없다는 말이다.) 교수님이 "내일 폭설이 오면 휴강입니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자연스레 내일 폭설이 오지 않으면 수업은 그대로 진행된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규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을 논리적 조건문으로 본다면 사정이 다르다. 교수님은 오로지 폭설이 오는 경우에 대해서만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폭설이 오지 않는 경우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내일 구름 한 점 없이 맑더라도 휴강할 가능성은 있다는 것이다. 오? (진리표를 보아도 전건이 거짓인 경우에는 후건의 진리값과 관계없이 조건문의 진리값은 참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일 폭설이 오지 않으면 수업을 하든 말든 교수님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저 폭설이 왔을 때 휴강을 하기만 하면 교수님은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II 실질 조건문의 역설

조건문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전건이 거짓이라면 - 후건이 참이든 거짓이든 - 전체 조건문의 진리값은 무조건 참이 된다는 이른바 '실질 조건문의 역설'이 발생한다. 때문에 우리는 어떤 조건문의 전건이 거짓인 경우, 그 조건문이 참이라는 것을 쉽사리 알 수 있지만, 후건의 진리값을 파악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오히려 후건이 등장함으로써 괜한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가령 "이순신이 여자면 외계인은 존재한다"라는 조건문은 분명 참이다. 전건이 거짓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조건문은 우리에게 외계인의 정보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제공해주지 않는다. 괜히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이순신이 여자가 아니라는 게 명백한 상황에서 이순신이 여자인 상황을 가정해서 뭐 어쩌겠다는 말인가? (다시 말해 이 조건문은 오로지 이순신인 여자인 경우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 그러니 '이순신이 만약 여자라면 이러저러할 것'이라는 말은 결코 거짓말이 될 수 없다.)

사실 위 문장은 "이순신은 여자가 아니거나 - 즉 남자이거나[각주:1] - 외계인은 존재한다"라는 선언문과도 같은 진리값을 갖는다. ~p∨q와 p→q의 진리 조건을 진리표에 나타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게 자유를 줄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죽음을 달라!"는 조건문은 "자유 혹은 죽음을 달라!"는 선언문과 같은 의미다.) 그렇다면 위 조건문은 "이순신은 여자가 아니다 - 즉 남자다"라는 참인 문장 - 엄밀히 말하자면 거짓인 문장의 부정문 - 을 굳이 진리값을 파악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다른 문장과 연결해 선언문을 만듦으로써 상대방을 오도mislead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선언지 부가addition에 따른 정보의 질 저하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설은 후건이 참인 경우에도 발생할 수 있다. 후건만 참이면 - 전건의 진리값이 무엇이든 - 조건문도 항상 참이 되기 때문이다. 선언지 부가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치다. q가 참이라면 임의의 문장 ~p에 대해서 ~p∨q도 항상 참이지 않겠는가? ~p∨q는 pq와 같은 진리값을 가진다는 말은 이미 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문장도 참이지만 우리에게 조금도 쓸모가 없다.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이순신은 남자다." 우리가 이미 이순신이 남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조건문은 우리에게 별다른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싸가지 없이 괜히 종이 낭비만 한다는 거다. 외계인이 존재하든 말든 이순신은 남자니까.


  1. 여성도 남성도 아닌 제3의 성이 있다면 여자가 아니라는 것이 곧 남자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생물학에서 제3의 성을 인정하는지의 여부와는 별개로 여기서는 논의의 편의상 남성과 여성 외의 성은 없다고 가정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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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Comments
  • 프로필사진 궁금이 2015.08.06 20:38 신고 안녕하세요! 덕분에 글 잘 보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위에 조건문 부분에 P이면 Q이다 할 때,
    포함관계가 반대로 그려진 것 같습니다. 확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프로필사진 형이상학적 찐따 2015.08.06 22:37 신고 안녕하세요 :-)

    지적해주신 것처럼 기호 ⊃는 많은 경우 집합의 포함 관계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기호 ⊃를 이렇게 이해한다면 집합 P에 속하는 원소는 Q에도 속한다(=집합 P는 집합 Q의 부분 집합이다)는 것을 나타낼 때는 'P⊂Q'로 적는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기호 ⊃는 조건문 연결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물론 이는 상당히 드문 경우이며 제가 아는 한 대부분의 논리학자들은 → 기호를 선호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기호가 집합의 포함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조건문 연결사로 → 기호를 사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기호를 계속해서 사용한 것은 이미 업로드한 포스팅에 쓰인 조건문 연결사 기호를 모두 바꾸기가 다소간 번거로운 탓도 있었습니다. 언젠가 시간을 내어 조건문 연결사(와 쌍조건문 연결사)를 →(와 ↔)로 바꿀 계획입니다.

    꼼꼼하게 짚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앞으로도 종종 들러주세요 :-)
  • 프로필사진 형이상학적 찐따 2015.11.29 16:24 신고 2015년 11월 29일에 조건문 연결사와 쌍조건문 연결사를 각각 (⊃와 ≡에서) →와 ↔로 변경했습니다.
  • 프로필사진 안녕하세요 2015.08.28 09:43 신고 혹시 철학과이신가요?
    집합론에 관심이 있어 흘러흘러 여기까지 들어오게 되었는데 체계적으로 정리되어서 보기가 좋네요.
    왜 이런 블로그를 검색으로는 찾기가 힘들까요?
  • 프로필사진 형이상학적 찐따 2015.08.28 17:58 신고 안녕하세요 :-) 칭찬 감사합니나

    철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 세부 전공이 논리학은 아니고요

    아무래도 논리학 관련 컨텐츠의 절대적인 양이 적어서 그걸 찾기도 어려운 것 같다는 상각이 드네요. 이런 컨텐츠를 꼼꼼히 공부하는 사람도 드물고 그걸 정리해서 공개하는 사람은 더욱 드무니까요 :-(

    부족하마나 제 글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
  • 프로필사진 ㅂㅂ 2017.06.18 00:57 신고 흠..혹시 철학 페북그룹 이용하신적은 없으신지....굉장히 현자급이라 생각하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이랑 비슷...
  • 프로필사진 형이상학적 찐따 2017.06.19 23:01 신고 없습니다.
    좀 찾아보기도 했으나 적어도 제가 찾은 것들은 수준이 지나치게 떨어지더라고요. (사실 이 블로그도 제대로 된 철학 정보 찾을 수 있는 곳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괜찮은 곳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
  • 프로필사진 데미안 2017.07.14 23:11 신고 곰곰 조건문 생각해보니 전건이
    거짓인 경우 이미 후건의 참 거짓여부를
    떠나 전체 조건문을 참 거짓이라고
    할 수 잇는지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됩니다
    또한 벤다이어그램으로 생각해봐도
    p={1}, q={1,2}이라 할때
    p 집합의 원소가 1이 아닌 3이엿을때
    즉 p가 거짓일 경우 조건문 자체가
    거짓입니다 아무리 이해가 안되네요
  • 프로필사진 형이상학적 찐따 2017.07.16 00:51 신고 죄송하지만 벤 다이어그램에 대한 말씀은 당췌 이해할 수가 없네요.
    어떤 조건문의 전건이 거짓이면 그 후건의 진리값과 무관하게 해당 조건문의 진리값은 참입니다.
    그 점은 이 글만 보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 달리 설명드리지 않겠습니다.
  • 프로필사진 감사드림 2017.07.23 15:04 신고 이렇게 양질의 정리노트를 공유해주시다니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날씨에 유의하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 프로필사진 형이상학적 찐따 2017.08.01 15:18 신고 감사합니다 :)
    더위 조심하세요!
  • 프로필사진 :) 2017.08.01 12:48 신고 음...왜 진리표가 저렇게 되나요? 전건과 후건 모두 거짓이거나 참인 경우는 이해 하겠는데 그렇지 않은 두개의 경우가 왜 그러한지 모르겠어요 :-(
  • 프로필사진 형이상학적 찐따 2017.08.01 15:48 신고 안녕하세요 :)

    전건과 후건이 모두 거짓이거나 모두 참인 경우에 조건문이 참이 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전건과 후건의 진리값이 다른 두 경우에는 왜 조건문이 각각 참과 거짓이 되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말씀이시죠?

    좀 특이하네요.
    보통 전건이 거짓일 때 왜 조건문이 참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분들이 많아서요.

    I.

    (1) 전건이 참이지만 후건은 거짓인 경우

    "비가 오면 휴강이다"라는 조건문을 예로 들어보죠.
    그리고 전건과 후건이 각각 참과 거짓이라고 가정해봅시다. 비는 왔는데, 휴강은 하지 않은 거죠.
    그러면 위 조건문이 거짓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이지 않나요?

    (2) 전건은 거짓이지만 후건은 참인 경우

    사실 이때 후건이 참이라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건이 거짓이면 조건문은 항상 참이거든요.

    이번에도 "비가 오면 휴강이다"라는 조건문을 고려해봅시다.
    그런데 비가 오지 않은 날에 교수님이 휴강을 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럼 교수님이 거짓말 한 것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교수님은 비가 오는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말씀하셨을 뿐
    비가 오지 않는 경우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비가 오지 않은 날에 수업이 취소되었다는 것 때문에 위 문장이 거짓이 되지는 않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전건은 참이되 후건이 거짓인 경우를 제외하면 조건문이 거짓이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II.
    조건문 연결사의 진리조건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위 조건문의 전건과 후건 사이에 성립하는 논리적 관계logical relationship이 아니라
    이들 문장sentences이 나타내는 사실facts 사이의 인과 관계causal relationship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수님이 왜 휴강을 할까요?
    아마도 날씨가 궂으면 그날 예정되었던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이겠죠? 가령 현장 답사를 못하게 될 수도 있잖아요?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휴강을 하게 만드는 원인이 없으면 당연히 휴강도 하지 않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하지만 조건문의 진리값을 결정하는 것은 전건과 후건 문장의 진리값입니다. 이들 문장이 나타내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삼각형이 각을 4개 갖는다면 펭귄은 날 수 있다"와 같은 조건문을 생각해보시죠. 한마디로 결코 있을 수 없는 상황에서 펭귄이 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맞죠. 존재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무슨 일이든 못 일어나겠습니까?

    III.
    만약 이런 이런 식으로 이해된 조건문의
    진리조건과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조건문의 진리조건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신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연결사를 정의할 수도 있겠습니다.

    대부분 논리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요.
  • 프로필사진 정그림 2017.08.03 11:05 신고 잘 읽었습니다 :)
    비전공자이지만 재밌어서 독학중인데 정말 힘드네요 ㅎㅎㅎ

    혹시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요...?
    영어권에서 논리학 자료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논문밖에 없으려나요,,?

    '논리와 사고'라는 책에서 조건문의 형태가 여러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국내에서 찾기가 힘들어서요ㅠㅠ
  • 프로필사진 형이상학적 찐따 2017.08.03 14:02 신고 논리학 관련 문헌은 당연히 논문과 단행본 등 다양한 형태가 있겠죠?

    논문은 Google Scholar나 JStor, PhilPapers 등에서 찾아보세요.
    책은 당연히 Amazon 등 서점에서 찾으셔야 하고요.

    『논리와 사고』의 영어판 제목을 아시면 서점에서 찾으시면 되죠.
  • 프로필사진 정그림 2017.08.03 20:04 신고 답변 감사드려요. 저자분이 한국분이시라..ㅎㅎㅎ 알려주신 정보 감사합니다.
    더운데 건강 조심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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