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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어 문제: 지식이란 무엇인가?

형이상학적 찐따 2014.11.24 22:41

"지식이란 무엇인가?"  에드먼드 게티어Edmund Gettier 이전에 철학자들은 지식의 성립 요건을 두고서 이렇다 할 만한 논쟁을 벌이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여러 철학자들이 지식이 성립하기 위해 충족되어야 할 필요(충분)조건들이라고 내세운 것들이 모두 대동소이했던 것이다. 그들에게 지식knowledge이란 곧 정당화justified된 참true인 믿음belief이었다. 그러니까 만약 내가 오바마가 남자라는 사실을 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1) 오바마가 실제로 남자여야 하고, (2) 내가 오바마는 남자라고 믿어야 하며, (3) 그 믿음이 정당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오바마가 알고보니 여자였다면 당연히 나는 지식을 갖고 있는 게 아니다. 오바마가 남자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렇게 믿지는 않는다는 건 당연히 말이 안 된다. 하지만 내가 오바마가 남자라고 믿고 있으며 이것이 참이라고 할지라도, 곧 바로 지식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이 믿음이 정당화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남자라고 믿는 이유가 '어젯밤 꿈에 오바마가 나와서 자신이 남자라는 것을 증명했다'라는 것이라면 당연히 나의 믿음은 그저 근거 없는 믿음일 뿐, 지식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위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기만 하면 문제는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오바마가 남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게티어가 등장하기 전까지 그랬다는 얘기다. 그는 겨우 3페이지도 안되는 논문을 통해서 지식의 개념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이렇게 짧은 논문이지만 그 영향력은 폭발적이어서 게티어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이 논문을 쓰고 나서 여든이 넘은 오늘날까지 단 한편의 논문도 쓰지 않았는데도 교수로 꿀 빨면서 밥 벌어먹고 살고 있다고 한다. 이 논문의 제목은 이런 것이다. "정당화된 참인 믿음은 정말 지식인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몇 가지 짚어둘 점이 있다. (1) 어떤 믿음이 정당화되었다는 것이 곧 그 믿음이 참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식의 성립 요건에 관한 기존의 이론에서도 참과 정당화는 다른 것으로 취급되었다. (2) 어떤 믿음 p 정당화된 것이고 p로부터 또 다른 믿음 q를 도출할 수 있다면 q도 정당화된 것이다. 만약 내일이 일요일이라는 믿음이 정당화된 것이고, 내일이 일요일이라는 믿음으로부터 내일은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을 도출할 수 있다면, 내일은 출근을 안 해도 된다는 믿음 역시 정당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게티어는 재미있는 두 가지 사례를 통해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한다. 사례를 제시하고 나서는 장황한 설명도 없다. 사실 할 필요도 없을 만큼 그 의미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례 1

대학 동기인 철이와 민수는 같은 회사의 취업 면접을 보러 간다. 면접이 끝나고 화장실에 잠깐 들른 철이는 회사 임원들이 옆에서 "민수? 그 친구가 참 괜찮더구만. 한 명밖에 못 뽑는데, 그 친구를 뽑아야겠어" 이런 말을 주고 받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된다. 임원의 말을 근거로 해서 철이는 (1) '민수가 취직을 할 것이다'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화장실을 나온 철이는 속이 답답해 자판기에서 음료수나 하나 뽑아 먹으려고 민수에게 동전을 좀 빌려 달라고 말했다. 민수는 주머니를 털어서 동전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철이는 민수의 손바닥 위에 있는 동전의 갯수를 헤아린 다음 (2) '민수는 동전 10개를 갖고 있다'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철이는 나름의 근거를 통해 정당화된 믿음 (1)과 (2)를 바탕으로 (A) '취직을 하게 될 사람이 동전 10개를 갖고 있다'라는 새로운 정당화된 믿음을 갖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임원들이 철이와 민수의 이름을 헷갈렸을 뿐, 사실은 처음부터 철이를 뽑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한편, 공교롭게도 철이는 동전 10개를 갖고 있었다. 경황이 없어서 코트 안쪽 주머니에 동전을 넣어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A) '취직을 하게 될 사람이 동전 10개를 갖고 있다'라는 철이의 정당화된 믿음은 참이 된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지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례 2

철이는 민수의 집에 놀러간다. 민수는 몇 년 전에 그랜저를 한 대 샀는데, 주차장에 보니 여전히 똑같은 종류의 그랜저가 있었다. 민수는 철이에게 "내 차로 드라이브나 하자"라고 말하고서는 철이를 주차장에 있던 그 그랜저에 태우고 함께 드라이브도 한다. 철이는 이런 정황을 바탕으로 (3) '민수는 그랜저를 갖고 있다'라는 정당화된 믿음을 갖게 된다. 민수와 한창 재밌는 시간을 보내던 철이는 문득 오랜 친구인 영희를 생각하게 된다. 영희는 출장을 워낙 자주 다녀서 지금 정확히 어디 있는지는 모르는 상황이다.

하지만 민수가 그랜저를 갖고 있다고 굳게 믿는 철이는 (B) '민수가 그랜저를 갖고 있거나 영희는 파푸아뉴기니에 있다'라는 또 다른 정당화된 믿음을 형성하게 된다. 영희가 어딨는지는 몰라도 민수가 그랜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믿음이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여기서 또 한 번의 반전이 일어난다. 사실 민수는 그랜저를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민수는 얼마 전에 사업에 실패해서 그랜저를 압류당했는데, 철이에게 이런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렌트카를 주차장에 미리 가져다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영희는 사업차 파푸아뉴기니에 머무르고 있던 참이었다. 그렇다면 (B) '민수가 그랜저를 갖고 있거나 영희는 파푸아뉴기니에 있다'라는 정당화된 믿음은 참이 되지 않는가? 그렇다고 철이가 지식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이제 게티어 이후의 철학자들에게는 지식의 성립 요건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에 대한 과제가 주어졌다. 바로 이것을 '게티어 문제Gettier Problem'라고 부른다.

게티어가 제시한 사례들에서처럼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무래도 참이 아닌 믿음을 정당화시켜주는 요인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는 철이가 취직을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1) '민수가 취직을 할 것이다'라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 - 임원들의 대화 - 가 있었다거나, (3) '민수는 그랜저를 갖고 있다'라는 믿음이 거짓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믿도록 하는 정황 - 미리 빌려온 렌트카와 민수의 자연스러운 행동 - 이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철이가 (1) '민수가 취직을 할 것이다'라거나 (3) '민수는 그랜저를 갖고 있다'라고 믿을 때, 그 믿음들은 제대로 정당화된 것이었을까? 왠지 아닌 것 같다.

때문에 게티어 문제를 붙잡고 씨름한 철학자들은 대개 제대로 된 정당화란 대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게티어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지식의 성립 요건을 설명하기 위한 기발한 이론을 들고 나오면 곧 이어 그 이론에 따르면 지식의 외연이 지나치게 넓다거나 좁다는 비판이 등장하는 식의 루틴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게티어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렇지만 모든 철학적 난제가 그렇듯, 게티어 문제가 갖는 의의 역시 현대 인식론의 풍부한 논의들을 이끌어 냈다는 데 있을 것이다.


리뷰 논문

Edmund Gettier, "Is Justified True Belief Knowledge?," Analysis 23 (1963): 121-123 [보러가기]


더 읽어보면 좋은 텍스트

Alvin Goldman, "A Causal Theory of Knowing," The Journal of Philosophy 64(12) (1967): 357-372

Linda Zagzebski, "The Inescapability of Gettier Problems," The Philosophical Quarterly 44(174) (1994): 65-73

Peter D. Klein “Knowledge, Causality, and Defeasibility” Journal of Philosophy 73 (1976): 792-812

Gail Stine “Skepticism, Relevant Alternatives and Deductive Closure” Philosophical Studies 29 (1976): 249-261

Jonathan Jenkins Ichikawa & Matthias Steup, "The Analysis of Knowledge,"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Spring 2014 Edition), ed., Edward N. Zalta, URL = <http://plato.stanford.edu/archives/spr2014/entries/knowledge-analy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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