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사 예정] 철학, 끄적끄적

논리적 어휘의 의미론적 값에 관한 프레게의 입장 본문

교과서·강의 노트/언어철학

논리적 어휘의 의미론적 값에 관한 프레게의 입장

동경 TOKYO 2016. 3. 6. 13:20

현대 언어철학은 고틀로프 프레게Gottlob Frege로부터 시작한다. 기호논리학의 언어를 고안했을 뿐만 아니라 언어의 표현들의 의미를 체계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시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기 때문. [기호논리학 예습]


구문론syntactics

언어의 구문syntax 혹은 문법grammar는 (1) 그 언어에서 쓰이는 어휘와 (2) 그 어휘를 가지고 구성할 수 있는 표현들expressions의 결합이 문법적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규칙들의 집합으로 구성된다. 가령 고유 명사, 문장, 술어, 연결사, 양화사 등이 기호논리학의 형식 언어에서 쓰는 어휘들이다. 규칙을 자세히 열거하지는 않겠다. 다만 예를 들자면 "PQR~∨ST&"는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이다. 통사론이 관심을 갖는 표현들의 속성은 오직 형식적formal 속성이다. 각 어휘의 의미가 무엇인지 따질 필요없이 각 어휘가 그 언어에서 쓰이는 어휘가 맞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주어진 규칙에 따라 결합되어 있는지만 확인하면 각 표현들이 통사론적으로 올바른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미론semantics

그러나 우리는 표현들이 의미론적 속성semantic properties을 가지고 있다는 것 역시 안다. 일례로 여러 표현들은 무언가를 가리킨다refer to. 무언가를 의미mean한다. 그런데 무언가를 가리킨다는 것은 - 무언가를 의미한다는 것은 - 다시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먼저 논증의 타당성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논증이 타당하다는 것은 그 논증의 전제가 모두 참이면서 동시에 결론이 거짓인 경우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단 논의의 범위를 명제논리에만 국한시키자면) 우리는 어떤 논증이 타당한지 알아보기 위해 각 전제들 (혹은 그 전제들을 구성하는 원자 문장들)에 다양한 진리값truth value을 할당하여 모든 전제들에 참이 할당되었을 때 결론에 거짓이 할당될 수 있는지를 검토하면 된다. 예를 들어

P&Q

∴ P

와 같은 논증의 타당성은

P

Q

P&Q

P

T

T

T

T

T

F

F

T

F

T

F

F

F

F

F

F

이런 진리표truth table를 그려서 확인할 수 있다.

직관적으로 논증의 타당성은 그 논증을 이루는 표현들이 갖는 어떤 의미론적 속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다. 그런데 방금 살펴본 것처럼 (명제논리 체계에서) 논증의 타당성은 논증을 구성하는 문장들의 진리값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문장이 진리값을 그 의미론적 속성들 중 하나로 갖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렇게 어떤 문장 속에 등장함으로써 그 문장의 진리값을 결정하는 의미론적 속성을 그 표현의 의미론적 값semantic value라고 부른다.

어떤 표현의 의미론적 값은 그 표현의 한 특징으로서 그 표현이 등장하는 문장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결정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자연히 문장의 의미론적 값은 진리값이다. 문장 S가 등장하는 문장은 곧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진리값을 결정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의 진리값이다.

여기서 프레게의 주요 논제 중 가장 중요하다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논제 - 합성성의 원리principle of compositionality - 가 등장한다.

논제 2: 복합 표현complex expression의 의미론적 값은 그 표현의 부분들이 갖는 의미론적 값에 의해 결정된다.

가령 P&Q라는 표현 표현의 의미론적 값, 곧 진리값은 P와 Q의 의미론적 값과 그것들이 결합되는 방식[각주:1]에 의해 결정된다. 바로 이 때문에 또 하나의 중요한 논제에 도출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논제 3: 어떤 문장의 구성 요소를 그것과 같은 의미론적 값을 지닌 다른 것으로 대체하더라도 문장의 의미론적 값(=진리값)은 바뀌지 않는다.

아닌 게 아니라 복합 표현의 의미론적 값이 그 표현을 이루는 부분들의 의미론적 값에 의해 결정된다면 그 부분들의 의미론적 값이 변하지 않는 한 그 부분들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복합 표현의 의미론적 값 역시 변하지 않을 것이다. 위 진리표에 문장 P대신 문장 R이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문장 P와 문장 R이 논리적 동치라면, 즉 모든 해석에서 같은 진리값(=의미론적 값)을 갖는다면 위 문장의 타당성 역시 훼손되지 않을 것이다. 고유 명사 "이황"과 "퇴계"가 같은 의미론적 가치(=지시체reference)를 가지므로 문장 "이황은 남자다"와 "퇴계는 남자다"의 의미론적 값(=진리값) 역시 같다는 말.


그렇다면 다른 어휘들의 의미론적 값은 무엇일까? [형식 언어 체계의 다양한 어휘들]

먼저 고유 명사proper names[각주:2] 적절한 이름이 아니다[각주:3] 의 의미론적 값은 그 명사가 가리키는 대상object이다(논제 4). "박정희는 쿠데타를 일으켰다"라는 문장은 참이다. 왜 그런가? "박정희"라는 고유 명사가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대통령이 된 바로 그 사람을 가리켰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직관적으로 옳아 보인다. 만약 "박정희"라는 고유 명사가 가수 싸이를 가리켰다면 이 문장은 거짓이 될 것이다. 어떤 고유 명사가 가리키는 대상이 무엇인지에 따라 그 고유 명사가 등장하는 문장의 진리값이 달라진다면 고유 명사가 가리키는 대상이 바로 그것의 의미론적 값이라고 볼 수 있겠다.

술어predicate는? 1차 함수를 의미론적 값으로 갖는다(논제 5). "f(x) = 2x + 1" 이런 거? 맞다. 그런 거. 다만 수학적 함수와 달리 여기서 말하는 함수의 인자argument[각주:4]는 반드시 수가 될 필요는 없다. 모든 대상이 함수의 인자가 될 수 있는 것. 예를 들어서 "-는 쿠데타를 일으켰다"라는 술어도 하나의 함수 F를 가리키는데 이 함수 F는 그 인자로 박정희라는 대상을 취할 수 있다. f(x)가 x 값으로 1, 2, 3을 취할 때 각각 3, 5, 7을 산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함수 F는 x 값으로 박정희와 싸이라는 대상을 취하여 각각 참과 거짓이라는 진리값을 산출한다. 달리 말하면 함수 F는 순서쌍 (박정희, 참)과 (싸이, 거짓) 등을 그 외연extension으로 삼는다. 프레게는 이렇게 진리값을 결과값으로 갖는 함수를 "개념concept"이라고 부른다.[각주:5]

양화사quantifiers의 의미론적 값은 2차 함수second-level function다(논제 7). 1차 함수를 인자로 삼아 진리값을 산출하는 함수이기 때문. 가령 "…는 모든 대상에 대하여 참이다" 정도의 의미를 갖는 보편 양화사는 "-쿠데타를 일으켰다"라거나 "-빨갛다" 등의 술어에 적용되었을 때 모두 거짓이라는 진리값을 산출할 것이다.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은 것과 빨갛지 않은 것이 존재하니까 말이다. (논의 영역을 따로 설정하지 않는 이상) 보편 양화사의 외연은 매우 넓지만 확실한 것은 순서쌍 (함수 F, 거짓)을 포함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연결사connectives는 진리함수truth function를 가리킨다(논제 7). 진리함수는 진리값을 인자로 취해 삼아 다시 진리값을 산출한다. 예를 들어 연언 연결사 &는 연언지가 되는 두 문장의 진리값을 두 인자로 삼아 새로운 진리값을 산출하는 함수를 의미한다. &가 가리키는 진리함수는 (참, 참, 참), (참, 거짓, 거짓), (거짓, 참, 거짓), (거짓, 거짓, 거짓) 등 4개의 순서 3중체들을 그 외연으로 갖는다.


리뷰 텍스트

Alexander Miller, Philosophy of Language 2nd ed. (New York: Routledge, 2007), Ch. 1

  1. 이것이 곧 진리함수truth function, 즉 연결사의 의미론적 값이다. [본문으로]
  2. 프레게가 사용하는 "고유 명사"라는 용어는 일상에서 고유 명사라고 불리는 것들에 더해서 한정 기술구definite description - 특정 대상을 지칭하기 위해 그 대상이 만족하는 조건을 제시하는 표현 - 까지도 함께 지칭한다. 예를 들어 "2016년 현재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중 가장 일찍 태어난 사람"도 프레게가 언급하는 고유 명사의 외연에 포함된다. [본문으로]
  3. 놀랍게도 이것을 "적절한 이름" 따위로 번역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명백한 오역이다. "적절하다"는 규범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고유 명사는 그 자체로 규범적 의미를 갖지 않는다. [본문으로]
  4. 동음이의어다. 영단어 "argument"는 논증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argument"는 함수의 인자 - 변항에 들어갈 값 - 를 의미한다. [본문으로]
  5. 논제 3에 의해 외연extension이 같은 함수 - 변항이 갖으면 항상 같은 결과값을 갖는 함수 - 는 같은 의미론적 값을 갖는 함수다. [본문으로]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