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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현상

'군바리'라고 부르지 말아달라?

동경 TOKYO 2015. 7. 9. 21:30

언어는 일상생활과 문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 국민이 군의 위상을 추락시키는 표현은 자제해 줬으면 한다.

국방부 대변인이 '군바리'라는 단어를 두고서 한 말이다. [관련 기사] 나는 이 말이 같잖게 들린다. "언어가 일상생활과 문화로 이어지"는 것은 알지만 거꾸로 일상생활과 문화가 곧 언어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국뻥부 국방부는 모르는가? '군바리'라는 말이 존재한다면 그 배후에는 반드시 그 말을 가능케 한 배경이 있게 마련이다. 그 배경에 손 댈 생각은 않고 특정한 언어적 표현만 막으면 "군의 위상"이 높아지는가?

그런데 보다 흥미로운 질문은 대체 저 말이 누구에게 하는 말이냐는 것이다. '군바리'라는 표현, 누가 쓰는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쓴다.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심지어 아직 군대를 가지 않은 어린 청소년이나 여성도 이 말을 알지 않는가?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다름 아닌 한때 군인이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군인들도 - 현역이든 예비역이든 - 이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는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는 군인들이 이 표현을 가장 많이 쓰는 것 같다. 신뢰할 만한 데이터에 의해 뒷받침된 것은 아니다.) 이상하지 않은가? 도대체 이들은 왜 자기 자신을 낮잡아 이르는가? 왜 누워서 침을 뱉느냐는 말이다.

어쩌면 이들이 누워서 침 뱉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자기 자신을 낮잡아 이를 이유가 없다. 미친 것도 아니고 말이지… 응? 군인들이 군인을 낮잡아 이르는 표현을 쓰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라는 말은 궤변 아닌가? 궤변이다. 이 군인들이 자신을 군인으로 규정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궤변이 아닐 수 있다. 그들이 자신을 군인으로 규정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군인들은 군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벗으려고 애쓰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은 누워서가 아니라 똑바로 서서 침 뱉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내 경험에 따르면 그렇다. 현역 복무를 하던 시절, 상관이 임무에 성실히 임할 것을 당부하던 때면 항상 하는 말이 있었다. "너희들은 군인이다. 그러니까 군인으로서의 정신 상태와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너희들은 군인이다. 그러므로 임무 수행시 조금이라도 태만해서는 안 된다." "너희들은 군인이다. 때문에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야 한다." 대강 이런 식이다. 그때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군인 아닌데?" 그때 내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정체성은 군인으로서의 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대학생인데 그냥 잠시 억지로 군대에 끌려와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2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몸 담으면서 법정 최저 임금도 받지 못하는 데 소속감이 생길 수가 없다. 소속감이 생긴다면 그건 동료들의 무리에 대한 소속감이지, 군대에 대한 소속감이 아니다.[각주:1]

법정 최저 임금도 안 주면서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요구한다면 당연히 회사가 싫어질 수밖에 없다. 시급 5천원 받고 일하는 편의점 알바생에게 당신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저는 편의점 계산원입니다"하고 대답할 것 같나? 천만의 말씀이다. 그에게 그 편의점은 (내키지 않지만) 돈 벌기 위해 잠시 거쳐가는 곳일 뿐이다. 상황이 그러한데 이 알바생이 편의점에 강도가 들면 열심히 편의점 지키겠나? 앞뒤 사정 살필 것 없이 "돈이고 물건이고 다 가져가도 괜찮으니 저만 해치지 말아주세요"다. 이런 와중에 강도가 들었을 때 반드시 소탕하라고 윽박지르면 점주는 "개새끼"가 되고 편의점은 "개 같은 곳"이 된다. 지금 군대가 딱 그 모양이다.

나는 한때 현역 군인이었고 지금은 예비역이지만 지금까지도 '군바리'라는 표현을 써왔고 앞으로도 쓸 것이다. 누워서 침 뱉는 게 아니다. 바로 서서 뱉는 것이다. 어딜 향해 뱉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최선을 다해 침을 뱉을 생각이다. '군바리'라고 부르지 말아달라? 같잖고 우스운 말이다. 품위 있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보상도 주지 않으면서 남들에게는 장병들의 사기가 떨어지니 '군바리'라고 부르지 말아달라며 생색을 내니 말이다. 군인들을 '군바리'로 대접하는 것부터 고칠 일이다. 국방부에게 눈 똑바로 뜨고 군인이 되기 싫은 군인들을 좀 쳐다보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가? "군의 위상"을 높이는 길이 이제 좀 보이는가? 내년 호국보훈의 달 6월에는 제발 생각을 좀 하길 바란다.


p.s.

국방부가 일을 벌이는 꼬락서니를 보자니 낮잡아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싸지른 똥이 너무 많아서 밟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안 밟을 수가 없는 지경이다. 한마디로 개노답이다. [내가 방금 10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해서 찾은 똥을 나열해보기로 한다. (1) 방산비리로 구속된 현역 군인 중 80% 석방 (2) 고의든 과실이든 총알을 못 막는 탄복 납품 받음 (3) 허구한 날 안보 운운하면서 북한 소총도 못 막는 방탄 헬멧이 태반 (4) 해킹 막으라고 만들놨더니 댓글 공작으로 대선에 개입한 사이버사령부 (5) 군의 우두머리라는 새끼들이 방산비리 (6) 장군이 하자니까 같이 발 벗고 나선 중령 (7) 장군이란 놈들이 골프치러 가서 성희롱 (8) 비리를 함께 저지른 방산업체 회장에게 군사기밀 유출 (9) 취업 청탁에 응하고 뇌물 수수 (10) 북한군이 최전방 철책을 넘어설 때까지도 모르고 있다가 깜놀 (11) 아군을 쏴 죽여버리는 병사가 나올 정도로 내부 결속 엉망 [참고(12) 아군이 아군에게 맞아서 죽을 때까지 방치 (13) 아픈 군인 제대로 치료도 못 해줌 (14) 부하 군의관을 자기 가족 주치의 마냥 착취 (15)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나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의 저서를 '불온서적'으로 지정 생각을 좀 하면서 살아라… 병신들아…]


  1. 이 지점에서 나는 기간병을 염두에 두고 있다. 똑같은 진술을 직업 군인에게도 그대로 적용하기는 물론 어렵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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