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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이사 예정] 철학, 끄적끄적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가수가 아니다! 『동물 해방Animal Liberation』에서 "종 차별주의speciesism"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자신이 속한 종의 개체들의 이해interests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한편 다른 종의 개체들의 이해에는 반하는 편견이나 편향적 태도"(p. 6)로 규정된 종 차별주의는 백인들의 이해를 흑인들의 이해보다 우선시하는 인종 차별주의racism나 남성들의 이해를 여성들의 이해보다 우선시하는 성 차별주의sexism와 비슷하다. 싱어는 종 차별주의가 인종 차별주의나 성 차별주의와 마찬가지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종 차별주의자"인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이 편견을 버리자고 말한다. 이에 셸리 케이건Shelly Kagan은 (1) 종 차별주의가 단순한 편견에 ..
I 개별 사례에 대한 직관의 우선성어떤 도덕적 주장을 옹호하거나 비판할 때 어떤 사례에 대한 직관intuition에 호소하는 방법은 윤리학에서 매우 흔한 논증 방법이다. "야, 공리주의자! 너희들 말이 맞다면 5명 살리려고 1명 배 갈라도 되는 거야?" 직관이 도덕적 주장에 대한 (결정적이지는 않더라도) 매우 강력한 증거 혹은 반증이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확실히 우리는 여러 사례들에 대한 직관적 판단에 꽤나 큰 중요성을 부여하고, 또 의존한다.하지만 이것을 직관 對 일반적 원칙general principles의 대립, 가령 공리주의적 원칙과 5명을 살리기 위해 1명을 죽이는 사례의 대립으로 설정해서는 곤란하다. 우리의 직관은 개별 사례만을 향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반적 원칙에 대해서도 직관을 갖고, ..
“행위자는 오로지 그가 다른 방식으로 행위할 수 없었던 경우에만 자신의 행위에 대해 도덕적으로 책임을 진다”는 “대안적 가능성의 원칙the principle of alternate possibilities”은 상당한 직관적 호소력을 갖는다(고 여겨진다). "그럴 수밖에 없었어!"라는 말은 왠지 이미 저질러진 행위에 대한 핑계로서 나름의 효력을 지니는 것 같다는 말이다. 하지만 해리 프랭크퍼트Harry G. Frankfurt는 이 원칙이 거짓이라고 말한다. 물론 다른 방식으로 행위할 수 있는 가능성(=대안적 가능성)이 없는 경우와 도덕적 책임이 면제되는 경우가 같은 때는 많지만 전자가 후자의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안적 가능성의 존재는 도덕적 책임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기본적인 전략은 간단하다. 누군가..
짐바브웨 국립 공원에서 살던 "세실Cecil"이라는 사자 한 마리가 미국인 치과 의사 월터 파머Walter Palmer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실이 알려지자 또 다시 여기저기가 시끌벅적하다. [관련 기사 #1 #2 #3] 이 소식이 많은 나라에서 언론의 주목을 받는 바람에 사자를 죽인 파머는 욕이란 욕은 있는대로 다 먹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사생활 보호에 관해서는 도대체가 개념이 없는 영화 배우 미아 패로우Mia Farrow가 파머의 자택 및 직장 주소를 SNS에 공개하면서 파머는 지금 테러를 당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달리고 있다. 이 사건은 인간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공격하기 쉬운 대상이 나타나면 굳이 잡을 필요가 없더라도 잔인하게 사냥하고야 마는 모습, 물론 그것은 ..
『도덕 형이상학 정초』 제2절에서는 합리적 존재라면 누구나 따를 정언 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았다. 정언 명령을 따르는 사람은 (자연 법칙을 따라 땅으로 떨어지는 야구공처럼) 그저 주어진 법칙을 따르는 게 아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적용되는 도덕 법칙을 입법legislate하는 목적의 왕국kingdom of ends의 시민이다. 이 입법의 과정에서 도덕적 주체를 스스로를 자율적인autonomous 존재로 여긴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 도덕 법칙을 입법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더군다나 이 도덕 법칙은 인간성을 목적으로 대우하라고 명령함으로써 자유로운 이성의 사용을 보장한다.정언 명령이란 게 있다면 그렇다는 얘기다. 칸트가 제2절에서 논증한 것은 인간들이 실제로 도덕 법칙..
『도덕 형이상학 정초』의 제1절은 도덕률에 대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갖고 있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그렇다고 제1절에 드러난 칸트의 논증이 귀납적인 것은 아니다. 칸트는 사람들이 실제로 법칙에 대한 존경심에 따라 행위한다는 관찰로부터 그러한 행위가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는 결론을 귀납적으로 이끌어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제1절의 논증은 만약 어떤 행위가 법칙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라면 그 행위는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는 식의 연역 논증이다. 누군가가 실제로 법칙에 대한 존경심에서 행위하는지의 여부는 윤리학의 탐구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정언 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이 우리의 의지를 다스린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말은 우리가 실제로 정언 명령에 따른다는 것을 보인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합리적..
"선의지good will를 제외하고서는 이 세상에서, 혹은 그 너머에서라도, 무제한적으로 좋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생각 할 수 없다"(4:393).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제1절의 목표는 "평범한 인식common recognition을 분석하여 그것의 최상 원칙supreme principle을 규명하는 것"(4:392)이다. 그래서 칸트는 도덕적으로 좋은 행위는 모두 특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평범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진정으로 옳은 이유에서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은 우리가 유일하게 "무조건적 가치unconditional worth"를 부여하는 선의지 - 도덕적 실천 이성 - 를 발현한다. 우리는 선의지를 반영하는 행위를 통해 이 특별한 가치를 실현시킨다.선의지가 지니는 가치는 그것이 다른 것과 맺는..
칸트가 보기에 이 세계의 합리적 질서란 우리가 경험을 통해 발견하는 것도, 오로지 순수 이성만을 통해 도달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구성하는 것이다.『순수 이성 비판The Critique of Pure Reason』은 바로 이론적인 - 앎을 통한 - 구성 작업의 일환이다. 그럼 실천적인 - 행위를 통한 - 구성 작업은? 의무론적 윤리학의 아빠, 칸트의 『도덕 형이상학 정초The Groundwork of Metaphysics of Morals』를 읽는 것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하기 위해서다.사실 『도덕 형이상학 정초』의 주요 테제들 - (1)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 목적이며 결코 다른 사람에 의해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2) 자기 스스로의 인간성에 대한 존경심은 다른 사람의 인간성..
전쟁 속에서도 우리는 윤리를 말할 수 있을까? 도덕적 고려사항 - 가령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에 관한 문제들 - 은 아예 전쟁에 적용될 수 없다는 식의 허무주의nihilism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면 전쟁 중의 윤리에 대해 말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윤리?나는 전쟁은 (거의) 모든 경우에 정당화될 수 없으며 도덕적으로 그른 것이라는 반전 평화주의antiwar pacifism에 매우 우호적인 편이지만 전쟁은 그냥 빡친다는 이유만으로 시작할 수 있는 그따위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전쟁이 용인될 수 있을만한 상황 - 가령 먼저 군사적인 선제 공격을 받았다든가 - 을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때 우리에게 적용될 도덕은 어떤 모습일까?가령 원자폭탄을 떨어뜨려서 엄청난 수의 민간인을..
I 결과주의와 가치 담지자로서의 사태Consequentialism is basically indifferent to whether a state of affairs consists in what I do, or is produced by what I do (…)p. 93 결과주의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결과가 도래하느냐 뿐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발생한 것인지 그리고 누구에 의한 것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가 죽었다고? 결과주의자가 신경을 쓰는 것은 오로지 그 결과다. 내가 그 사람을 칼로 찔러 죽였는지 아니면 굶어 죽어가는 그에게 밥 사먹을 돈을 보내주지 못해서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없다. 나 때문인지 너 때문인지도 상관없다. 어찌됐든 사람이 죽는 사태state of affairs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