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사 예정] 철학, 끄적끄적
사자 사냥과 인간 사냥, 분노하고 침묵하는 일에 대하여 본문
짐바브웨 국립 공원에서 살던 "세실Cecil"이라는 사자 한 마리가 미국인 치과 의사 월터 파머Walter Palmer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실이 알려지자 또 다시 여기저기가 시끌벅적하다. [관련 기사 #1 #2 #3] 이 소식이 많은 나라에서 언론의 주목을 받는 바람에 사자를 죽인 파머는 욕이란 욕은 있는대로 다 먹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사생활 보호에 관해서는 도대체가 개념이 없는 영화 배우 미아 패로우Mia Farrow가 파머의 자택 및 직장 주소를 SNS에 공개하면서 파머는 지금 테러를 당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달리고 있다. 이 사건은 인간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공격하기 쉬운 대상이 나타나면 굳이 잡을 필요가 없더라도 잔인하게 사냥하고야 마는 모습, 물론 그것은 사자의 목을 따는 파머의 모습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파머를 공격하는 많은 이들에게서도 광기어린 폭력성이 서려있다. 나는 바로 이 인간 사냥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이미지 출처]
이렇게 묻는다. 세실을 죽인 것이 나쁜가? 지금 치과 의사 편드는 것이냐고 목에 핏대부터 세우지 말고 대답을 한 번 해보기 바란다. 나쁜가? 왜 그런가?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없다면 당신은 그저 분노의 표적으로 삼을 대상을 찾지 못해 안달복달하던 차에 마침 공격하기 좋은 대상이 나타나자 폭력성을 있는대로 쏟아내는 것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당신이 최근에 소스 찍어 먹은 돈까스도 누군가의 살덩이였다. 그 돈까스를 이 소스 저 소스에 찍어 먹으면서 당신은 얼마나 분노했는가? 당신이 재미 삼아 낚아 올린 붕어도 누군가의 어미가 될 수 있었다. 태어날 수도 있었던 치어들이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으로 흩어져 버릴 수 있음을 아는 당신은 얼마나 스스로를 책망했는가? 돼지와 소와 닭이 제 몸 하나 겨우 들어갈 만큼 좁은 우리에 갇혀 오로지 고깃덩어리가 되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그들을 부위별로 등급별로 나누면서 당신은 또 얼마나 슬퍼했는가? 왜 달팽이는 처먹으면서 개 먹는 것 가지고 지랄하냐는 이 진부한 물음을 당신에게 또 던져야 하는가? 그 치과 의사가 잘했다는 말은 한 적도 없고 할 생각도 없다. 그러니 또 공격할 대상을 찾았다고 흥분부터 하지 말고 이 질문들을 곱씹어 보길 바란다. 당신은 그저 마구잡이로 폭력성을 발휘하는 그 치과 의사랑은 다른 사람이 아니던가?
[이미지 출처]
다수의 편에 서서 소수를 향해 손가락질 하기는 쉽다. 직접 해보니까 참 쉽죠? 지금은 치과 의사를 공격하는 쪽이 다수다. 인간 사냥꾼이 나를 공격하려 든다면 그는 다수의 편에 서는 것이 된다. 때문에 그는 아마 나를 이길 것이다. 하지만 동물을 사랑한다면서? 나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동물이다. 나도 사냥하지 말아주면 안 될까? 정말로 동물 보호에 뜻이 있기나 하다면 말이다. 그렇다. 정말로 동물 보호에 뜻이 있기나 하다면…
혹시 당신도 사자 사냥꾼을 잡으려다 인간 사냥꾼이 되지는 않았는가? 반성해 볼 일이다. 인간 사냥꾼, 그들이 목표하는 바는 정말로 동물 (혹은 생명)의 보호인가? 아니면 다수에의 편승인가?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싸우는 것인가? 도덕적인 사람 코스프레인가? 폭력을 막는 것인가? 무분별한 폭력성의 발산인가?
진실로 동물 보호에 대의를 품은 사람은 고작 치과 의사 하나 붙잡아서 "씨발놈"이며 "개새끼"로 만드는 데에 관심이 없다. 사자 세실의 죽음이 가능했던 것은 동물을 함부로 사냥하는 것에 대한 침묵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물의 삶과 죽음에 대해 말했더라면 세실은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것 (그리고 해야 했던 것)은 바로 이 침묵을 깨는 일이 된다. 그저 분노하며 또 다른 사냥감을 찾아 무자비하게 찢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문제의 치과 의사가 아니꼬운 전세계의 동물 애호가들께서도 - 자신이 정말 동물 애호가가 맞다면 - 지금껏 자신들이 지켜온 이 침묵에 대해 반성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자신들이 새롭게 벌이고 있는 인간 사냥과 그것에 대한 스스로의 침묵에 대해서도 반성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정직해지는 길이 아닐까?
나는 이제 이 인간 사냥에 대한 침묵을 깨려 한다. 이 침묵을 깨지 않으면 세실처럼 잔인하게 사냥 당하는 인간이 계속해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세실의 죽음으로 세간이 이토록 떠들썩한 것을 보면 인간 사냥에 대해서는 어찌 이렇게도 깊은 침묵이 지켜지고 있는지가 놀라울 따름이다. 세실의 경우처럼 또 누군가의 죽음이 있어야만 이 침묵이 깨어질 것인가? 이 침묵이 무섭다. '혹시 나에게도 화살이 날아오지는 않을까?'
'사건과 현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의 조건들: 영화 <그녀>에 대한 단상 (0) | 2017.08.01 |
---|---|
철학을 한다는 건 허구한 날 책 읽기만 하는 게 아니냐는 말들에 대하여 (7) | 2016.01.05 |
'군바리'라고 부르지 말아달라? (0) | 2015.07.09 |
청소년 언어순화? 꼴값을 떨고 있네 (4) | 2015.06.07 |
비트겐슈타인은 파검·흰금 드레스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0) | 2015.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