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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논리학 XXV: 양화논리6 [여러 양화사를 갖는 문장] 본문
이 글은 연세대학교 철학과의 선우환 교수님께서 강의하신 논리학 수업 필기를 바탕으로 쓴 것입니다. 작성자 본인의 이해에 따라 소폭 수정하거나 추가한 부분이 있습니다. 실제 강의 내용과 다를 수 있습니다.
I 여러 양화사를 갖는 문장
둘 이상의 양화사를 가진 문장은 때에 따라 이해하기가 좀 어려울 수 있다. 양화사가 붙는 순서에 따라서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물론 항상 그런 건 아니다. 가령 두 양화사가 같은 종류의 것인 경우에는 그 순서를 바꾸어도 문장의 의미가 바뀌지 않는다. 예를 들어
(∀x)(∀y)Lxy ⇔ (∀y)(∀x)Lxy
위 두 문장은 논리적으로 동치다. 술어 L을 '-는 ~를 사랑한다'로 이해하면 위 문장은 모두 "모든 x와 y에 대하여 x는 y를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모두가 모두를 사랑하고 또 모두가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다. 두 양화사가 모두 존재 양화사인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x)(∃y)Lxy ⇔ (∃y)(∃x)Lxy
위 두 문장은 "어떤 x와 y에 대하여 x는 y를 사랑한다"는 의미다. 쉽게 풀자면 사랑을 하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랑을 하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꼭 다른 사람일 필요는 없다. 이 세계에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1명만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이 문장은 참이다.)
문제는 두 양화사의 종류가 다를 때다. 논리학 공부하다가 가장 많은 학생들이 안드로메다로 가는 지점 중 하나다… 집중하자… 다음의 4가지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① (∃x)(∀y)Lxy |
② (∀y)(∃x)Lxy |
박애주의자 All people are loved by somebody | 누구나 사랑을 받는다 Every person is loved by somebody |
③ (∃y)(∀x)Lxy |
④ (∀x)(∃y)Lxy |
슈퍼스타 All people love somebody | 누구나 사랑을 한다 Every person loves somebody |
먼저 ①과 ②는 어떻게 다를까? ①은 (∀y)Lxy를 참으로 만들어주는 x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y)Lxy는 뭔가? "모든 y에 대하여 x는 y를 사랑한다"는 말이다. 쉽게 말하자면 x가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①은 바로 이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박애주의자 x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②는 모든 y가 (∃x)Lxy를 참으로 만들어준다(=y의 자리에 무엇이 오든 (∃x)Lxy가 참이 된다)는 뜻이다. (∃x)Lxy는? y를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때문에 y의 자리에 누가 오더라도 y를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②는 결국 누구나 사랑을 받는다(=사랑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의미를 갖는다. y의 자리에 슈렉(a)을 넣든 야수(b)를 넣든 (혹은 그 누구를 넣든) ②는 참이 된다. (∃x)Lxa(=슈렉을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나 (∃x)Lxb(=야수를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나 모두 참이기 때문이다. 피오나와 미녀가 있으니까!
①과 ②가 의미하는 바를 그림으로 간단하게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이미 눈치 챈 사람도 있겠지만 ①이 참이면 ②도 반드시 참이다. 물론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③과 ④ 역시 같은 방식으로 그 의미를 짚어볼 수 있다. ③은 (∀x)Lxy를 참으로 만들어주는 y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모든 사람이 y를 사랑한다는 말이 참이게 하는 슈퍼스타 y가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 y는 자기 자신에게도 사랑을 받을 것이다.) ③이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는 슈퍼스타에 대한 문장이었다면 ④는 누구나 사랑을 베푼다는 말을 하고 있다. ④는 모든 x가 (∃y)Lxy를 참으로 만들어준다는 뜻이다. x가 사랑하는 사람(=x의 사랑의 대상)이 존재한다. 그런데 세상 모든 사람이 x의 자리에 올 수 있다. 엄마(a)가 사랑하는 사람(=엄마의 사랑의 대상)도 존재하고 춘향(b)이가 사랑하는 사람(=춘향이의 사랑의 대상)도 존재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y)Lay도 (∃y)Lby도 참이다. 그 누구라도 사랑의 대상을 갖고 있다(?)는 말은 곧 누구나 사랑을 한다는 말이다. 사랑이라는 걸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③과 ④의 의미를 도식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역시 ③이 참이라면 ④도 필연적으로 참이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II 응용
영미권에서는 ①과 ②, 그리고 ③과 ④를 혼동하지 않기 위해 'all'과 'every'라는 표현을 구분해서 사용한다. 이들을 적절히 구분해내지 못했을 때 종종 "fallacy of all and every"를 범했다고 말한다. (번역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또 ②와 ④로부터 각각 ①과 ③을 도출해내는 것은 특별히 "양화사 도치의 오류quantifier shift fallacy"라고 부른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가 필연적 존재자necessary being를 증명하기 위해 『신학대전Summa Theologica』에서 던진 다음과 같은 드립이 "fallacy of all and every"의 한 예다. 이 드립은 아퀴나스가 귀류법reductic ad absurdum이랍시고 던진 것이다. 세계의 모든 존재자가 우연적 존재자contingent being라고 - 다시 말해 필연적 존재자가 없다고 - 가정한다면 결코 논리적으로 모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아퀴나스의 주장이다. 간단하게 옮기면 이렇다.
(1) 모든 존재자는 우연적 존재자(=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존재자)다. 모든 존재자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2) 이 세계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
(3)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새로운 존재자가 생겨날 수 없다.
(4) 이 세계에 존재자가 있다.
(5) 그러므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는 불가능하다.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존재자(=필연적 존재자)가 있다.
아퀴나스는 바로 이 필연적 존재자가 신이라고 주장한다. 이 논증은 올바르지 않다. 어디에 허점이 있을까? 바로 (1)에서 (2)를 이끌어내는 대목이다. (1)에서 "모든 존재자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Everything is possible not to exist"를 의미한다. 책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가능하다. 컴퓨터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가능하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가능하다. 이들 각각이 존재하지 않을 수는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로부터 (2) "이 세계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는 명제를 도출해낼 수는 없다. 이 말은 곧 "All things are possible not to exist"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책과 컴퓨터와 나와 이 세계의 모든 존재자가 한꺼번에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은 (1)이 참이라고 이유만으로 내세울 수 있는 주장이 아니다. (물론 아퀴나스의 논증을 무너뜨리기 위해 無에서 有가 나올 수 없다는 전제 (3)을 거부하는 방법도 있다.)
양화사 도치의 오류의 예로는 "모두에게 엄마가 있다Everyone has a mother"는 사실을 근거로 "모든 사람의 엄마인 사람이 하나 있다All people have a mother"는 주장을 하거나 "모두가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다Everyone has a political opinion"는 전제로부터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옹호하는 어떤 정치적 견해가 있다All people have a political opinion"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짓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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