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사 예정] 철학, 끄적끄적
말의 뜻은 객관적이다: 프레게의 로크 비판 본문
프레게Gottlob Frege는 뜻sense이 객관적objective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논리적인logical 것들로부터 심리적인psychological 것들을, 객관적인 것들로부터 주관적인subjective 것들을 항상 분명하게 구별해내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1 그가 보기에 2어떤 표현의 뜻을 파악한다는 것은 - 곧 그 표현을 이해한다는 것은 - 그 표현을 심상mental image이나 구상picture, 관념idea 등의 주관적 대상과 연관짓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기호의 지시체 [의미론적 값]과 뜻은 그것과 관련된 관념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 고유 명사의 지시체는 우리가 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가리키는 대상 자체다. 이때 우리가 갖게 되는 관념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것이다. 그 사이에 [그러니까 지시체와 관념 사이에] 뜻이 있다. 그것은 관념과 같이 주관적이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대상 자체와 동일한 것도 아니다." 프레게는 지시체와 뜻과 관념을 구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유비를 든다. 3
누군가 망원경을 통해 달을 관찰한다. 달 자체가 지시체 [의미론적 값]에 비유된다. 이것이 바로 관찰의 대상은 망원경 내부의 접안 렌즈에 투사된 실제적 상과 관찰자의 망막에 맺힌 상에 의해 매개된다. 전자 [접안 렌즈에 투사된 실제적 상]를 뜻에, 후자 [망막에 맺힌 상]를 관념 혹은 직관intuition [체험experience]에 비유할 수 있겠다. 망원경 내부의 광학적 상은 실로 일면적one-sided이며 관찰의 시점에 의존적이다. 하지만 여러 관찰자에 의해 사용될 수 있는 한에서 여전히 객관적이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여러 사람들이 그것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각각의 관찰자들은 저마다의 망막에 다른 상을 갖게 될 것이다. 4
뜻을 심리적이고 주관적인 대상으로 이해한 대표적 철학자 중 하나가 바로 존 로크John Locke다. 그는 『인간지성론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제3권에서 "낱말들이 (…) 가리키는 것은 그 낱말들을 사용하는 자의 정신에 내재한 관념들ideas뿐"이라고 썼다. 가령 "정육면체cube"라는 표현을 이해하는 것은 - 그것의 뜻을 파악하는 것은 - 정육면체의 심상 혹은 내적 구상을 마음속에 품는 것이 된다. 앵무새도 "정육면체"라고 발음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 까닭은 앵무새가 자신의 정신에 정육면체의 관념을 형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뜻에 대한 로크의 입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5
누군가가 "X"의 뜻을 파악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그가 해당 낱말을 듣거나 말할 때면 X에 대한 심상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프레게는 뜻에 대한 이 같은 입장을 비판한다. 왜냐? 뜻은 공적public이지만 관념은 사적private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낱말들에 같은 뜻을 부여하고 또 다른 사람들이 어떤 낱말을 통해 의미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언어는 공적이다. 그러나 로크가 인정하듯 관념은 오로지 그 관념을 가진 자의 의식에만 드러나는 것이다. 로크의 설명은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상호 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
"화가와 말을 타는 기수, 동물학자들은 "적토마"라는 이름을 듣고 아마도 각기 다른 관념을 연상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관념과 기호의 뜻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점이 드러난다. 뜻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공통된 속성이지만 특정인의 마음을 구성하는 부분이나 혹은 그 마음의 양태는 아니다. 기실 인류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transmit될 생각들의 공공 저장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실로 뜻은 우리로 하여금 소통할 수 있게 한다. 6그런데 로크가 말하듯 "동일한 대상도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다른 관념들을 산출할 수 있다. 가령 제비꽃을 본 누군가의 마음속에 산출된 관념이 천수국을 본 다른 이의 마음속에 산출된 관념과 같을 수 있다." 관념은 소통의 매개체가 될 수 없다. 프레게는 때문에 뜻과 관념이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7
문제는 감각질 전도qualia inversion의 경우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철이의 시각적 감각질이 체계적으로 전도되어 있다. 가령 철이는 돌이가 시금치와 이끼를 볼 때 느끼는 감각질을 토마토와 피를 볼 때 느끼고 돌이가 토마토와 피를 볼 때 느끼는 감각질을 시금치와 이끼를 볼 때 느낀다. 하지만 이런 감각질의 전도는 체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기에 - 감각질의 전도가 같은 방식으로 지속되는 것이기에 - 철이와 돌이의 언어적 행위linguistic behavior에서는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가령 철이는 시금치와 이끼를 보고 "초록색이다"라고 말하고 토마토와 피를 보고 "빨간색이다"라고 말한다.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오면 가고 빨간불이 들어오면 멈춘다. 만약 뜻에 대한 로크의 설명이 옳다면 로크는 돌이와 철이가 절대 소통을 할 수 없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가 보기에 뜻은 곧 관념인데 그들은 (적어도 색에 대해서는) 다른 관념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크는 이것이 자신의 입장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봤던 것 같다. "한 사람의 정신이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옮겨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그러니까 감각질의 체계적 전도가 일어나고 있는지의 여부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 되고 (…) 어떤 이의 마음에 어떤 것이 현상하든 그는 여전히 그 현상들을 이용해 사물들을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구분해낼 수 있을 것이고 "파랑"이나 "노랑"과 같은 이름들로 일컬어지는 구분을 이해하고 또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마치 그의 마음에 나타난 현상이나 관념들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나타난 관념들과 정확히 똑같은 것처럼 말이다. (…) [감각질 전도에 대한 가설이 참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가진 지식의 개선이나 삶의 편의성을 위해 [이 가설을 검토하는 것이] 크게 유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굳이 그것을 검토하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다." 간단히 줄이자면 감각질 전도가 일어나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왜냐면 우리는 감각질 전도가 일어나지 않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언어적 행위를 보이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로크는 비일관적인 것이 아닌가? 감각질 전도가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여전히 우리는 문제 없이 언어적 행위를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뜻은 관념이며 관념은 사적인 것이므로 같은 뜻을 공유할 수 없다?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로크가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각질 전도가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언어를 통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감각질 전도가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도 언어를 통해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한 의미에서 서로 소통을 한다고 볼 수는 없으며 여러 낱말들에 진정으로 동일한 뜻을 부여했다고도 볼 수 없다." 그러나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우리가 언어를 통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대로 할 수 있지만 소통은 일어나고 있고 있으며 우리가 주고 받는 말은 사실 같은 뜻을 지니지 않는다니? 그렇다면 대체 소통이 무엇이기에? 로크는 프레게의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운 것 같다. 프레게의 새로운 논제가 이 지점에서 등장한다.
논제 19: 뜻은 객관적이다. 뜻을 파악하는 것은 관념이나 심상, 사적이며 심리적인 대상을 갖는 것이 아니다.
리뷰 텍스트
Alexander Miller, Philosophy of Logic 2nd ed. (New York: Routledge, 2007), §§2.3
- 그가 문장의 뜻을 생각thought이라 칭하기 때문에 자칫 뜻이 심리적인 혹은 주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이는 프레게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본문으로]
- Gottlob Frege, 『The Foundations of Arithmetic』 (Evanston, IL: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1953), p. x. [본문으로]
- Gottlob Frege, "On Sinn and Bedeutung" in Michael Beaney, ed., 『The Frege Reader』 (Oxford: Blackwell, 1997), pp. 154-155. [본문으로]
- Ibid., p. 155. [본문으로]
- John Locke,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Kenneth P. Winkler, ed. (Indianapolis, IN: Hackett Publishing, 1996), Bk. III, Ch. ii, Para. 2. [본문으로]
- Gottlob Frege, op. cit., p. 154. [본문으로]
- John Locke, op. cit., Bk. II, Ch. xxxii, Para. 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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