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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이사 예정] 철학, 끄적끄적
언어는 일상생활과 문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 국민이 군의 위상을 추락시키는 표현은 자제해 줬으면 한다.국방부 대변인이 '군바리'라는 단어를 두고서 한 말이다. [관련 기사] 나는 이 말이 같잖게 들린다. "언어가 일상생활과 문화로 이어지"는 것은 알지만 거꾸로 일상생활과 문화가 곧 언어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국뻥부 국방부는 모르는가? '군바리'라는 말이 존재한다면 그 배후에는 반드시 그 말을 가능케 한 배경이 있게 마련이다. 그 배경에 손 댈 생각은 않고 특정한 언어적 표현만 막으면 "군의 위상"이 높아지는가?그런데 보다 흥미로운 질문은 대체 저 말이 누구에게 하는 말이냐는 것이다. '군바리'라는 표현, 누가 쓰는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쓴다.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심지어 아직 군대를 ..
https://brunch.co.kr/@texto/91브런치로 글을 옮깁니다
『도덕 형이상학 정초』 제2절에서는 합리적 존재라면 누구나 따를 정언 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았다. 정언 명령을 따르는 사람은 (자연 법칙을 따라 땅으로 떨어지는 야구공처럼) 그저 주어진 법칙을 따르는 게 아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적용되는 도덕 법칙을 입법legislate하는 목적의 왕국kingdom of ends의 시민이다. 이 입법의 과정에서 도덕적 주체를 스스로를 자율적인autonomous 존재로 여긴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 도덕 법칙을 입법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더군다나 이 도덕 법칙은 인간성을 목적으로 대우하라고 명령함으로써 자유로운 이성의 사용을 보장한다.정언 명령이란 게 있다면 그렇다는 얘기다. 칸트가 제2절에서 논증한 것은 인간들이 실제로 도덕 법칙..
『도덕 형이상학 정초』의 제1절은 도덕률에 대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갖고 있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그렇다고 제1절에 드러난 칸트의 논증이 귀납적인 것은 아니다. 칸트는 사람들이 실제로 법칙에 대한 존경심에 따라 행위한다는 관찰로부터 그러한 행위가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는 결론을 귀납적으로 이끌어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제1절의 논증은 만약 어떤 행위가 법칙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라면 그 행위는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는 식의 연역 논증이다. 누군가가 실제로 법칙에 대한 존경심에서 행위하는지의 여부는 윤리학의 탐구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정언 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이 우리의 의지를 다스린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말은 우리가 실제로 정언 명령에 따른다는 것을 보인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합리적..
"선의지good will를 제외하고서는 이 세상에서, 혹은 그 너머에서라도, 무제한적으로 좋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생각 할 수 없다"(4:393).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제1절의 목표는 "평범한 인식common recognition을 분석하여 그것의 최상 원칙supreme principle을 규명하는 것"(4:392)이다. 그래서 칸트는 도덕적으로 좋은 행위는 모두 특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평범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진정으로 옳은 이유에서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은 우리가 유일하게 "무조건적 가치unconditional worth"를 부여하는 선의지 - 도덕적 실천 이성 - 를 발현한다. 우리는 선의지를 반영하는 행위를 통해 이 특별한 가치를 실현시킨다.선의지가 지니는 가치는 그것이 다른 것과 맺는..
칸트가 보기에 이 세계의 합리적 질서란 우리가 경험을 통해 발견하는 것도, 오로지 순수 이성만을 통해 도달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구성하는 것이다.『순수 이성 비판The Critique of Pure Reason』은 바로 이론적인 - 앎을 통한 - 구성 작업의 일환이다. 그럼 실천적인 - 행위를 통한 - 구성 작업은? 의무론적 윤리학의 아빠, 칸트의 『도덕 형이상학 정초The Groundwork of Metaphysics of Morals』를 읽는 것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하기 위해서다.사실 『도덕 형이상학 정초』의 주요 테제들 - (1)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 목적이며 결코 다른 사람에 의해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2) 자기 스스로의 인간성에 대한 존경심은 다른 사람의 인간성..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청소년의 "언어문화 순화"를 목적으로 가요를 제작한다고 한다. [관련 기사] 청소년들에게 은어와 비속어를 쓰지 말라고 권장하는 내용의 노래를 만들어서 학교 등에 보급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개꼴값이 아닐 수 없다.일단 노래가 찌질할 것이다. "욕은 하지 말아요♪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 말해요♬" 그런 걸 청소년들이 따라 부르면서 내면화할 것 같나? 솔직히 나는 이런 노래 부르는 친구랑은 안 논다. 노래는 흥이 나야 사랑받는다. 은어와 비속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는 씹선비 말씀 교훈을 담고 있는 노래가 흥겨울 리가 없다. 당장 실효성부터 없을 것이란 얘기다.그럼에도 이런 일을 벌인다는 것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언어의 용법이 변화하는 양상에 대해 쥐뿔도 모르고 있다는 걸 증명한다. 언어는 인간이..
전쟁 속에서도 우리는 윤리를 말할 수 있을까? 도덕적 고려사항 - 가령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에 관한 문제들 - 은 아예 전쟁에 적용될 수 없다는 식의 허무주의nihilism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면 전쟁 중의 윤리에 대해 말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윤리?나는 전쟁은 (거의) 모든 경우에 정당화될 수 없으며 도덕적으로 그른 것이라는 반전 평화주의antiwar pacifism에 매우 우호적인 편이지만 전쟁은 그냥 빡친다는 이유만으로 시작할 수 있는 그따위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전쟁이 용인될 수 있을만한 상황 - 가령 먼저 군사적인 선제 공격을 받았다든가 - 을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때 우리에게 적용될 도덕은 어떤 모습일까?가령 원자폭탄을 떨어뜨려서 엄청난 수의 민간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