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사 예정] 철학, 끄적끄적
맥키의 오류 이론 본문
맥키J. L. Mackie의 오류 이론Error Theory은 인지주의에 속한다. 그의 오류 이론은 기본적으로 도덕적 판단은 믿음을 표현하는 것이며, 진리값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뭐야? 이모티비즘 무시하는 거야? 그런데 맥키는 조금 더 나간다. 도덕적 진술은 죄다 거짓이라는 것이다. 참인 도덕적 진술이 없다는 말이다.
원래 오류 이론이란 것이 어떤 담론에 속하는 모든 원자 문장들이 체계적으로systematically 그리고 일양적으로uniformly 거짓이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맥키는 이걸 도덕적 담론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입장을 뜯어보면 이렇다.
개념적conceptual/의미론적semantic/심리적psychological 주장: 도덕적 문장은 진리 조건truth conditions을 가지며, 이것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정언적으로 지시적인 사실objectively and categorically prescriptive facts이 존재해야 한다. 도덕적 판단은 믿음을 표현하며, 이것이 참이 되기 위해서는 객관적·정언적으로 지시적인 사실이 존재해야 한다.
존재론적ontological 주장: 객관적·정언적으로 지시적인 사실이란 없다.
곧 오류 이론은 인지주의의 노선에 서 있으되 실재론realism을 부정하는 것이다.
I 로크의 색에 대한 오류 이론
로크John Locke도 오류 이론을 제시했다. 무엇에 대해? 『인간지성론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에서 제2성질secondary qualities로 분류한 색color에 대해. 색에 대한 모든 진술은 모두 거짓이라는 말.
그는 먼저 속성properties을 기질적dispositional 속성과 정언적categorical 속성으로 나눈다.
어떤 대상에 대한 기질적 속성의 귀속ascription이 참이라면 그것은 반사실적 조건counterfactual conditional의 참에 의한 것이다.
가령 잘 깨짐brittleness이라는 속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소주병이 잘 깨진다는 말은 만약 이 병이 별로 높지 않은 높이에서 떨어진다거나 별로 세지 않은 힘을 받았을 때 깨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별로 높지 않은 높이에서 떨어지거나 별로 세지 않은 힘을 받는 상황은 반사실적이다. 실제로 버어진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정언적 속성의 귀속이 참이라면 그것은 어떤 반사실적 조건의 참에 의한 것이 아니다.
삼각형임triangularity이라는 속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팬티가 삼각형이라는 말은 실제로는 성립하지 않았지만 성립할 수도 있었을 다른 상황에서 이 팬티가 어떠했을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냥 지금 이 상황에서 3개의 변과 다 합쳤을 때 180도가 되는 3개의 각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가 보기에 색에 대한 개념concept(=우리에게 현상으로 다가오는 색)은 정언적 속성이다. 우리가 갈색인 책상이 불이 꺼지면 갑자기 다른 색이 되었다가 불이 켜지는 순간 갈색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전혀 아니다. 빨강에 대한 개념(=우리가 보는대로의 빨강=우리에게 현상으로 다가오는 빨강)은 정언적 속성이다.
그런데 이 세계에 정언적 속성으로서의 빨강이 존재하는가? 빨강이 이 세계에서 실제로 가지고 있는 속성은 기질적이다.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 정상적인 관찰자에게 눈이 심하게 붉게 보이는 속성. 그게 빨강이다. 그러니까 이 세계에 정언적 속성으로서의 빨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빨강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우리가 빨갛다고 여기는 외부 대상에 귀속시키는 것은 체계적으로 그리고 일양적으로 거짓이다.
II 오류 이론 비판 전략
오류 이론을 비판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개념적 주장을 비판한다. 사실은 빨강에 대한 개념이 기질적 속성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빨강에 대한 개념이 애초에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 정상적인 관찰자에게 붉게 보이는 것에 대한 개념이라고 말하는 것. 그런데 이 전략의 문제는 색상 경험의 현상phenomenology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빨강에 대한 개념인가? 특정한 파장의 빛을 반사하는 물리적 구조에 대한 개념이 아니고?
둘째, 존재론적 주장을 비판한다. 빨강이 정언적 속성으로서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가령 빨강이란 특정 범위의 파장에 속하는 빛을 반사하는 물리적 구조 N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도 색상 경험의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내가 딸기를 보면 나는 거기서 N을 보는가? 아니다. 나는 그냥 빨간색을 볼 뿐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빨강을 물리적 구조 N으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사실 빨갛다고 여기던 물체가 N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나중에 드러나면 어떡할 것인가? 우리는 그래도 여전히 이 물체가 빨갛다고 말할 것이다. 이 말은 물리적 구조 N이 결코 빨강과 분석적으로 동치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N이 아닌 모든 물리적 구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III 맥키의 개념적 주장
도덕적 진술에 대한 오류 이론도 로크가 제시한 것과 구조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맥키에 따르면 도덕적 요구moral requirement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객관적·정언적으로 지시적인 요구에 대한 개념이다.
(1) 지시적? 어떤 요구가 지시적이라는 것은 그 요구가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것을 해야 한다ought 혹은 우리가 어떤 것을 할 이유reasons 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것이 도덕적으로 좋다는 말은 (제 종이는 사각형이라는 말처럼) 단순히 어떤 속성을 기술describe하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지시prescribe하는 것이다.
(2) 정언적? 이건 칸트Immanuel Kant가 언급한 정언과 동일한 의미다. 요구가 다름 아니라 정언적으로 지시적이라는 말은 그 지시가 행위자의 경향심inclinations이나 욕망desires 등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떤 것이 도덕적 요구라면 내가 하고 싶든 하기 싫든 해야 한다.
(3) 객관적? 객관성은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맥키도 객관성에 대한 분명한 그림을 그려주지는 않는다. 그에 따르면
"어떤 요구가 객관적이라는 말은 곧 그것이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있다(pp. 24, 31, 33)거나 참 혹은 거짓이 될 수 있다(pp. 26, 33)거나, 지각perceive될 수 있다(pp. 31, 33)거나 인지recognize될 수 있다(p. 42)거나 우리의 선호나 선택에 선행하며 그것들과 독립적(pp. 30, 43)이라거나, 세계라는 직조물의 부분part of the fabric of the world(p. 12)이거나 우리의 선호와 선택 중 일부를 지지back up하고 정당화validate(p. 22)하거나 단순히 참이 될 수 있다(p. 30)거나 일반적 논리의 문제로서 타당할 수 있다(30)거나 특정 방식으로 사고할 것이라는 우리의 선택이나 결심에 의해 구성되지 않는다(p. 30)거나 정신의 바깥extra-mental에 있다(p. 23)거나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것(p. 38)이라거나 내성introspection의 대상이 될 수 있다(p. 39)거나 설명적 가설이나 추론의 전제로 등장할 수 있다(p. 39)는 것 등을 의미한다" (108-109). 1
이게 모두 연접conjunction이 아니라 선접disjunction된 것이기 때문에 이 조건들을 모두 만족시켜야 객관성이 성립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확실한 것은 이것들 중 일부가 성립하면 객관성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IV 기이성 논증
이제 맥키가 해야 할 것은 자신이 도덕적 요구의 개념이고 말했던 것, 그러니까 같은 종류의 객관적·정언적으로 지시적인 요구(=객관적 가치objective values)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보이는 것이다.
그는 이 존재를 상정하는 것이 형이상학적으로나 인식적으로나 문제가 된다고 본다. 행위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객관적 사실이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아주 독특한 것일텐데 그런 게 대체 어디있으며, 대체 그런 것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뭐 그딴 게 다 있어?" 그리하여 이름도 "기이성 논증Argument from Queerness"이다.
(1) 형이상학적 문제
그는 "만약 객관적 가치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우주에 있는 그 어떤 것과도 판이하게 다른 매우 이상한 종류의 객체entities 혹은 관계relations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뭐가 그렇게 이상하다는 걸까? 2
"좋음의 형상the Form of the Good은 그 특성상 그것에 대한 지식이 지식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지도direction와 지배적인 동기overriding motive를 제공한다. 어떤 것이 좋다는 것은 곧 그것이 좋은 줄 아는 사람에게 그것을 추구하라고 말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추구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객관적 선objective good은 그것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추구할 것이다. 이것은 그 사람이 혹은 모든 사람이 그것을 추구할 욕망으 갖게 되었다는 우연저 사실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어떤 식으로는 추구 되어야 함이라는 속성to-be-pursuedness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하게 옿음과 그름에 대한 객관적 원칙들이 존재한다면 그 어떤 (가능한) 그른 행위는 어떤 식으로든 취해지지 말아야 함이라는 속성not-to-be-doneness을 내재하고 있을 것이다. 혹은 클라크Clarke가 제시한 상황과 행위 간의 필연적인 합치의 관계necessary relations of fitness 같은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어떤 상황이 어떠어떠한 행위에 대한 요구demand를 내재하도록 말이다. 3
도덕적 사태state of affairs의 성립은 곧 "어떠어떠한 행위에 대한 요구를 내재"하는 상황의 성립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계에서 발견하는 사태들은 이런 요구를 내재하고 있지 않다. "규범적으로 무력normatively inert"(110)하다는 것이다. 이 세계는 도덕적 성질을 예화하는 도덕적 사태를 포함하지 않는다.
(2) 인식론적 문제
"만약 우리가 [객관적 가치에 대해] 인식한다면 그것은 특별한 도덕적 지각 능력이나 직관에 의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는 우리가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능력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이는 비자연적 성질에 대해 얘기한 무어Moore나 "도덕적 직관의 능력"에 대해 얘기한 직관주의자intuitoinists들도 인지하고 있던 점이다. 직관주의는 오랫동안 지지를 받지 못했으며, 기실 그것이 왜 그럴듯하지 못한지를 지적하는 것은 쉽다. 자주 강조되지 않지만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직관주의의 핵심 논제가 바로 가치에 대한 객관주의적 견해를 내세우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결국 받아들일 만한 것이라는 점이다. [객관적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결국 직관주의를 받아들이게 될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곧 직관주의는 다른 형태의 객관주의가 포장해놓은 것을 아주 무미건조하게 만들 뿐이다. [객관적 가치가 있다는 주장을 실컷 전개하면 그 뒤에 갑자기 나타나서 그것은 직관이란 신비로운 능력으로 알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는 것이다." 4
대체 우리가 사태와 인지적 접촉을 하게 되는지, 그리하여 어떻게 사태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되는지에 대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은 사태가 곧 개관적 가치라는 주장에 보태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결국 도덕적 지각이니 도덕적 직관이니 하는 것들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근데 이게 대체 뭔가?
리뷰 텍스트
Alexander Miller, Contemporary Metaethics: An Introduction, 2nd ed. (Cambridge: Polity Press, 2013), §§6.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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