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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자 유명론 II [극단적 유명론] 본문
유명론nominallism도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극단적 유명론austere nominalism. 보편자를 상정하지 않고 오로지 구체적 개별자concrete particulars의 존재만으로 실재론이 설명하고자 한 현상 - ① 속성 일치attribute agreement 현상, ② 주어-술어 문장의 참, 그리고 ③ 추상적 지시체를 갖는 듯 보이는 표현을 포함하는 문장의 참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극단적 유명론의 입장이다.
① 속성 일치 현상
개별자들이 어떤 측면에서 유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이에 대한 극단적 유명론자들의 대답은 간단하다. "애초에 설명할 필요가 없다." 토마토랑 소방차는 그냥 빨간 것이다. 보편자니 뭐니 하는 것 때문에 빨간 것이 아니라는 말. 말하자면 그들이 빨갛다는 측면에서 유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선행 사실prior facts이란 없다는 것이다.
이상한가? 사실 그 어떤 것도 원초적primitive 혹은 기초적basic인 것으로 그저 받아들이지 않는 이론은 없다. 실재론자들도 플라톤的 도식과 개별자에 의한 보편자의 예화 등을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보지 않는가? 물론 그들은 속성 일치 현상을 설명한다. 하지만 그것을 설명하는 사실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유명론은 다만 그들보다 조금 앞서서 속성 일치 현상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뿐이다. 그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부 유명론자들은 더 나아가 보편자가 속성 일치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는지도 의문스럽다고 지적한다. 설명항은 피설명항과는 독립적으로 규명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개별자의 속성 일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보편자는 그것이 설명하고자 하는 개별자와 별개로 규명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실재론은 개별자를 참고하지 않고도 그것이 예화한다는 보편자의 정체를 규명할 수 있는가? 유명론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토마토와 소방차는 왜 빨갛다는 점에서 동일한가? 그것들이 빨강redness를 예화하고 있어서? 그런데 빨강이란 대체 무엇이며, 그것을 예화한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빨강은 곧 빨간 개별자가 공통적으로 갖는 것이며, 또 빨강을 예화한다는 것은 빨간 개별자가 된다는 것이 아닌가? 결국 실재론자가 속성 일치 현상에 대해 내세우는 것은 설명이 아니다. 그저 속성 일치 현상을 "보편자" 같은 온갖 화려한 말로 꾸며놓았을 뿐. 이럴거면 차라리 속성 일치 현상은 그 어떤 선행 사실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환원불가능한 기초적 사실이라고 말하는 게 낫지 않은가?
② 주어-술어 문장의 참
주어-술어 문장은 어떻게 참이 되는가? 실재론자들은 (1) 문장의 참이 언어적 구조와 비언어적 구조 사이의 대응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출발해, (2) 이 대응이 성립하자면 문장의 구성 요소와 대응하는 대상이 세계에 존재한다고 보는 편이 가장 합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술어에 대응하는 바로 그 "대상"이 보편자다.
하지만 극단적 유명론자는 보편자를 상정하지 않아도 이와 유사한 수준의 설명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들 역시도 (1) 문장의 참이 언어적 구조와 비언어적 구조 사이의 대응에 의존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들에 따르면 "a는 F다"가 참인 것은 실제로 a가 F이기 때문이다. (2) 뿐만 아니라, 문장의 각 구성 요소가 세계의 대상들과 대응한다고도 말한다. a는 특정 대상을 가리키고, F는 어떤 대상에 대해 참이거나 어떤 대상에 의해 충족되는 술어인데, F가 a에 대해 참이거나 a에 의해 충족되므로, "a는 F다"라는 문장은 참이다.
너무 사소한 혹은 하잖은 주장인가? 극단적 유명론자들은 그들 자신의 입장이 사소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런데 그들은 이 사소함이 바로 이론의 강점이라 말한다. 어째서 "소크라테스는 용감하다Socrates is courageous"라는 문장이 참이냐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풀 밭에서 블루베리가 자라니까" 혹은 "물은 액체니까"라고 답하지 않는다. 당연하다. 풀 밭에서 블루베리가 자라거나 물이 액체인 것은 소크라테스가 용감하다는 문장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까. "소크라테스는 용감하다"라는 문장이 참인 이유는 다만 소크라테스가 용감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 문장이 참이 되는 근거를 짚어내는 것이다. 그 문장을 참으로 만들어주는 사실을 정확히 짚어낸다는 것. 이건 사소할지언정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이런 사소함은 실재론에서도 발견된다. ①에서 짚어본 것처럼 보편자를 규명하기 위해 반드시 개별자를 참고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보편자를 통한 설명도 별다른 정보를 주지 않는 사소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실재론자들은 빨간 물체가 왜 빨간지 설명하기 위해 그것이 빨강을 예화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빨강을 예화한다는 게 무엇인가? 그냥 빨간 개별자가 된다는 것 아닌가? 애초에 이건 설명이 아니다.
③ 추상적 지시체를 갖는 듯 보이는 표현을 포함하는 문장의 참
먼저, 추상 단칭 용어abstract singular terms를 포함하는 문장들을 어떻게 참이 되는가?
(1) 용기는 도덕적 덕이다Courage is a moral virtue.
(2) 삼각형은 모양이다Triangularity is a shape.
(3) 힐러리는 파랑보다 빨강을 선호한다Hilary prefers red to blue.
(4) 빨강은 색이다Red is a color.
(5) 소크라테스는 용기를 예화한다Socrates exemplifies courage.
극단적 유명론자들은 이 문장이 얼핏 보편자를 지칭하는 표현들을 포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개별자에 대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가령 (5)는 용감한 소크라테스에 관한 말일 뿐, 이 문장에서 "용기courage"라는 표현이 별도의 보편자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용기"는 어떤 대상에 대한 이름이 아니다. 이 문장은 다만 "소크라테스는 용감하다"는 말에 불과하다. 사실 (5)는 "용감하다"는 일반적 용어general term 혹은 술어를 적용시킬 수 있는 개별자에 대한 문장이라는 것.
추상 용어를 포함하는 다른 문장들도 이렇게 일반 용어만을 포함하는, 그리고 그 일반 용어를 적용시킬 수 있는 개별자들에 대한, 문장으로 변환할 수 있다. 가령
(2a) 삼각형의 대상들은 모양을 가진 대상들이다Triangular objects are shaped objects.
(4a) 빨간 대상은 색을 가진 대상들이다Red objects are colored objects.
(5a) 소크라테스는 용감하다Socrates is courageous.
그런데 문제는 모든 문장을 이렇게 번역하기는 힘들어 보인다는 것이다.
(1a) 용감한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덕스럽다Courageous persons are morally virtuous.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는 말이 아니다.(3a) 힐러리는 파란 대상들보다 빨간 대상을 선호한다Hilary prefers red objects to blue objects.
(1)과 (3)이 참이라고 하더라도 (1a)와 (3a)은 거짓일 수 있는 듯 보인다. 용기는 있지만 다른 덕 - 지혜와 절제 등 - 을 갖추지 못해서 도덕적으로 덕스럽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령 지헤와 절제의 미덕을 갖추지 못한다거나. 마찬가지로 힐러리가 파란색보다는 빨간색을 좋아하지만 파란 물건보다 파란 물건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힐러리가 아이폰을 좋아한다면 빨간 안드로이드보다는 파란 아이폰을 선택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다른 조건이 같다면ceteris paribus"이라는 조항을 달아 번역을 좀 더 다듬을 수 있다.
(1b) 다른 조건이 같다면, 용감한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덕스럽다.
(3b) 다른 조건이 같다면, 힐러리는 파란 대상들보다 빨간 대상을 선호한다.
일단 (1b)와 (3b)는 각각 (1)과 (3)에 대한 올바른 번역인 듯 보인다.
문제는 "다른 조건이 같다면" 조항의 의미를 정확히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1b)에서 "다른 조건이 같다면"은 "용기를 제외한 다른 덕을 갖추고 있다면"을 의미할 것이고, (3b)에서는 "색상을 제외한 다른 속성이 모두 같은 한 쌍의 대상들이라면"을 의미할 것이다. 문제는 이것들이 각각 "덕"이나 "색상"처럼 추상 단칭 용어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극단적 유명론자가 번역을 통해 없애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어쩌면 그들은 "다른 조건이 같다면" 조항이 의미하는 바는 특정 술어가 특정 대상에 대해 참이라는 의미라고 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1b)는 덕과 관련된 모든 술어를 충족시키는 참인 사람에 한하여 용감한 사람은 도덕적으로 덕스럽다는 의미이고, (3b)는 색상과 무관한 모든 술어를 충족시키는 대상에 한하여 힐러리가 파란 대상보다 빨간 대상을 선호한다는 의미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사라진 것 같지는 않다. 가령 우리의 언어는 윤리적 어휘를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아서, 덕스러운 사람의 성품에 대응하는 모든 술어를 갖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모든 술어를 충족시키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도덕적으로 덕스럽지 않은 사람은 있을 수 있다. (1)은 참이지만 (1b)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그렇다면 (1b)는 (1)의 번역일 수 없다.
(3b)도 마찬가지로 (3)의 완벽한 번역이라 보기 힘들다. 윤리적 어휘와 달리 대상의 속성을 기술하는 용어는 충분히 마련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파란색보다 빨간색을 더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파란색 물건보다 빨간색 물건을 더 좋아하는가? 어차피 똑같은 바다면 시뻘건 바다가 좋을까?
극단적 유명론자들은 "다른 조건이 같다면" 조항을 완전하게 분석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상황에 따라서 그 조항을 사용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 조항을 써야 할 때와 쓰지 말아야 할 때를 규정하는 조건들의 목록을 확정적으로 제시하는 게 힘들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적어도 (1b)나 (3b)가 각각 (1)과 (3)에 대한 적절한 번역이라는 점은 내세울 수 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추상 단칭 용어를 포함하지 않는, 그러나 추상적 지시체를 갖는 듯 보이는 표현을 포함하는 문장들은?
(6) 저 토마토와 저 소방차는 같은 색을 갖고 있다That tomato and that fire engine have the same color.
(7) 그는 사촌과 성격이 같다He has the same character traits as his cousin.
이 문장들은 "빨강"이나 "용기" 같은 추상 단칭 용어를 포함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색상이나 성품과 관련된 술어들에 적용될 수 있는 대상들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때문에 실재론자들은 이 문장들의 참도 위 술어들에 대응하는 색상이나 성품과 관련된 보편자를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하지만 유명론자들은 이 지점에서도 (6)과 (7)은 기실 개별자에 대한 문장이라고 말한다. 그저 개별자들이 색상이나 성품의 측면에서 유사하다는 주장을 하는 것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6)과 (7)은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까? 바로 부사adverb를 사용하는 것이다.
(6a) 저 토마토와 저 소방차는 색상 측면에서 일치한다That tomato and that fire engine colorwise.
(7a) 그와 그의 사촌은 성품 측면에서 일치한다He and his cousin agree characterwise.
물론 여기서도 부사化의 조건은 분석할 수 없는 것으로 남는다. 그런데 이렇게도 번역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장들이 또 있다.
(8) 어떤 종들은 이종 교배가 가능하다Some species are cross fertile.
(9) 저 모양은 여러 번 예화된 바 있다That shape has been exemplified many times.
설사 이것들을 번역할 방법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끝이 나지는 않는다. 누군가가 또 다시 극단적 유명론자가 번역하기 힘들 것 같은 문장을 들고 나올 수도 있고, 그걸 미리 다 차단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유명론자들은 이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기도 한다. 설사 번역이 잘 되지 않는 문장이 있더라도 그것은 유명론의 문제가 아니라 그 문장이 표현하는 믿음 자체가 문제라는 것. 한마디로 번역이 안 되면 번역기의 문제가 아니라 문장이 표현하는 믿음이 문제라는 것이다. 先철학적 믿음과 이론 사이의 갈등이 일어날 때는 이론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입장이다. 이 갈등 때문에 유명론을 버리고 실재론을 택하는 건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언어가 "플라톤的 어조"를 갖는 것은 그것이 오랜 세월 플라톤的 전통의 철학과 그것에서 뻗어나온 문화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뿐이다. 그렇게 변질된 "어조"를 고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유명론을 거절해서 되겠는가?
하지만 모든 유명론자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설사 번역의 불가능성을 제쳐두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기 때문이다. (1) 극단적 유명론은 모든 것을 그저 분석할 수 없는 것 혹은 원초적인 것으로 취급해버린다. 속성 일치 현상, "다른 조건이 같다면" 조항, 부사化… 하지만 실재론은 앞서 살펴본 모든 문장에 대한 분석을 제공한다. 극단적 유명론을 채택하는 순간 이것들은 그저 주어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 되고 만다. (2) 마치 보편자의 존재를 암시하는 듯한 문장들을 오직 개별자에 대한 것으로 보이는 문장으로 번역하기 위한 일반적 지침이 제시되지 않는다. 유일한 원칙은 오직 개별자에 대한 문장으로 보이게끔 해야 한다는 것. 그것 뿐이다. 그 이상의 구체적인 번역 방법은 없다. 이럴 때는 "다른 조건이 같다면"을 붙이고, 저럴 때는 부사化를 하라는 말 밖에는 없다는 것. 그런데 앞서 살펴본 문장들은 구조적으로 그렇게나 다양한가? 이들 문장은 모두 추상적 지시체를 갖는 듯한 표현들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같지 않은가? 이들을 모두 관통하는 구조가 있지는 않은지? 추상적 지시체에 대한 매우 체계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실재론과 달리 유명론은 이들 문장에 대해 파편적인 설명만을 줄 뿐이다.
이렇게 보면 유명론이 실재론에 대해 비교 우위를 갖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던 단순성simplicity 측면에서도 패배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물론 존재론적으로 유명론은 실재론보다 단순하다. 더 적은 범주의 존재자들을 상정하니까. 하지만 원초적인 혹은 분석할 수 없는 개념들을 워낙 많이 도입하다보니 체계성이 떨어진다. 추상적 지시체 현상에 관한 설명은 파편적이다. 반면 실재론은 직관적으로 꽤나 그럴듯한 방식으로 많은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는 단일한 체계를 제시한다. 그렇다면 설명적으로 실재론이 유명론보다 더 단순한 것은 아닌지? 존재론적 단순성이 설명적 단순성보다 높이 평가받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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