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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자 실재론 I [기본 입장과 옹호 논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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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자 실재론 I [기본 입장과 옹호 논변]

동경 TOKYO 2017. 1. 11. 00:50

I 실재론

사물들은 어떤 면에서 일치한다. 토마토와 소방차를 붉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철학자라는 점에서, 빨간 펜과 파란 펜은 펜이라는 점에서. 그래서 우리는 토마토와 소방차를,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빨간 펜과 파란 펜을 각각 묶을 수 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관심이나 목적에 따라 사물들을 분류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이들이 가진 특성에 의해 그 분류법이 결정된다. 그러면 이것들이 같은 것으로 분류될 수 있는 까닭은, 그것들의 어떤 면에서는 일치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Parmenides』에서 이렇게 말한다.

특정한 형상Form이 있어서 다른 사물들이 그것에 참여하게 되고, 그것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네. 같음, 큼 아름다움, 정의로움 등에 참여하게 되면서, 그들은 같아지거나, 커지거나, 아름다워지거나, 정의로워지게 되지" (130E-131A).

도식적으로 표현하자면 사물 a, b, c, …, n는 형상 어떤 형상 Φ에 대해 어떤 관계 R를 갖기 때문에, 비로소 그들 사이에 어떤 유사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 사물들을 "개별자particulars"라 부른다. 한 시점에 한 덩어리의 공간만을 점유하는 사물, 우리가 평소에 보는 것들이다. 컴퓨터, 책상, 펜, 살마, 자동차, 건물들. 형상 Φ는 "보편자universals"라 부른다. 개별자가 형상에 참여하는 것, 즉 그것에 대해 R 관계에 있는 것을 표현할 때는 "개별자 a가 보편자 Φ를 예시한다instantiate, 드러낸다exhibit 혹은 예화한다exemplify"고 말한다. 보편자는 개별자와 달리 둘 이상의 개별자에 의해 예시되거나, 드러내지거나 예화될 수 있는 "반복가능한repeatable" 것이다.

이 보편자란 것이 존재하며, 바로 이 보편자로 인해 개별자들이 속성 일치 현상을 보이게 된다는 입장이 바로 실재론realism이다. 실재론자들은 개별자들이 유사성을 갖게 되는 것은 같은 보편자를 예화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II 보편자

보편자는 다양한 모습을 갖는다. 각 개별자 하나 하나에 의해 예화되는 보편자를 일항one-place 혹은 단항monadic 보편자라 부른다. 빨간색임being red, 큼being large, 부드러움being soft, 인간임being a human, 철학자임being a philosopher, 펜임being a pen 같은 것들이 일항 보편자다. 이것들을 속성property이라 부른다. 토마토와 소방차가 모두 빨간색이라는 점에서 같은 이유는 특정 속성, 즉 단항 보편자를 예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철학자들은 좀 더 엄밀하게 속성과 종류kind를 구분하기도 한다. 속성은 개별자가 소유possess함으로써 예화하는 것이고, 종류는 개별자가 소속belonging함으로써 예화하는 것이다. 인간임이나 펜임이 종류에 해당한다. 이 종류는 그것을 예화하는 개별자가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소크라테스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을 준다는 말이다. 물론 소크라테스틑 인간이다. 반면 속성을 그렇게 무엇인지 밝혀진 개별자를 추가적으로 수식하거나 특징지어준다. 큰 인간이라느니 똑똑한 인간이라느니. 어쨌거나 둘은 모두 단항 보편자다.

둘 이상의 개별자가 함께 예화하는 보편자도 있다. 그걸 복항many-place 혹은 다항polyadic 보편자라 부른다. 이런 보편자를 관계relation라 한다. 가령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라는 개별자는 ~의 스승임being the teacher of과 같은 보편자에 참여함으로써 특정 관계를 맺게 된다. 주의할 점은 다항 보편자에 참여하는 개별자들의 순서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스승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다항 보편자에 참여하는 개별자는 언제나 순서 n중체n-tuples로서 참여하게 된다. 순서쌍 (소크라테스, 플라톤)이 위 관계에 참여한다는 말. 이렇게 두 개의 개별자가 예화하는 보편자를 특히 이항two place/dyadic 보편자라 부른다. 

단항 보편자

다항 보편자

속성

종류

관계

보편자는 일반성generality의 측면에서 위계를 갖는다. 가령 철학임이나 학생임은 모두 인간임이라는 보편자를 예화한다. 인간임이라는 보편자는 다른 두 보편자보다 더 일반적이다.

보편자의 위계는 보다 유사한 보편자가 왜 유사한지를 설명해준다. 가령 박근혜와 문재인과 안철수는 사람임이라는 보편자를 예화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하지만 문재인과 안철수가 박근혜와 달리 공유하는 것들이 조금 더 많은 것 같은데 그것은 바로 박근혜는 예화하지 않지만 문재인과 안철수는 공동으로 예화하는 보편자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남자임being a male이라든가 말을 더듬음stammering 같은 것들.


III 왜 실재론인가?

기본적으로 실재론을 옹호하는 논변은 최선의 설명을 향한 추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설명을 요구하는 현상들이 굉장히 많은데, 실재론이 이 현상들에 대한 최선의 설명을 제공해준다면 - 적어도 다른 이론에 비해 유의미하게 좋은 설명을 제공해준다면 - 그것으로부터 실재론이 참이라 추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어떤 현상을 잘 설명해준다는 걸까? 물론 여러가지다. 일단 두 가지만 살펴보자.

① 주어-술어 문장

(1) 소크라테스는 용감하다Socrates is courageous.

(2) 플라톤은 인간이다Plato is a human being

(3)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스승이다Socrates is the teacher of Plato.

주어subject와 술어predicate을 가진 문장들 중 많은 것들이 참이다. 어떻게? 세계와 문장 사이의 대응을 통해. 가령 (1)이 참이려면 실제로 소크라테스가 용감해야 한다. (1)의 문장 구조와 세계의 구조가 서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라는 말은 소크라테스라는 사람과 대응한다. 그렇다면 "용감하다"는 말도 어딘가에 대응해야 할 것이 아닌가? 주어와 마찬가지로 술어도 지시체reference를 가져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재론자들은 바로 술어의 지시체가 보편자라고 본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위와 같은 문장들이 참이 될 수 있는지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실 보편자가 여러 개별자에 의해 예화될 수 있듯, 술어도 여러 주어와 호응할 수 있다. 우리는 "플라톤이 용감하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술어도 주어와 마찬가지로 지시체를 갖는다면, 술어도 주어로 쓰일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1)에서 "용감하다"는 술어는 용기courage라는 보편자를 그 지시체로 가질 것이다. 그런데 용기와 소크라테스는 모두 대상objects으로 그것을 가리키는 말은 이름name이다. 하지만 "용감하다"는 이름이 될 수 없다. "용감하다는 크다." 이런 식의 문장은 말이 안 되지 않은가? 용기를 가리키는 말은 "용기"가 되는 편이 적절해 보인다.

이것은 단순히 문법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름은 단칭 용어singular term다. 하나의 대상을 지칭refer to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하나의 대상만에 대응하는 말이다. 하지만 술어는 일반 용어general term, 여러 대상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용어다. 조금 전 말한 것처럼 우리는 "플라톤이 용감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술어는 (이름과 달리) 여러 대상에 대해 참true of이거나 여러 대상에 의해 충족된다satisfied by.

실재론자들은 이에 대해 술어는 어떤 대상을 표현express하거나 함의connote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용감하다"는 표현은 용감한 인간들에 대해 참이거나 용감한 인간들에 의해 충족되지만, 동시에 용기라는 대상을 표현하거나 함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곧 어떤 술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술어가 적용될 수 있는 대상들의 집합을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집합의 원소들이 하필이면 그 집합에 속하게끔 만드는 보편자도 함께 규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장 (1)은 아래와 같이 다시 쓸 수 있다.

(1') 소크라테스는 용기를 에화한다Socrates exemplifies courage.


② 추상 지칭

실재론자들은 추상 단칭 용어abstract singular terms가 포함된 문장들이 어떻게 참이 될 수 있는지도 잘 설명해줄 수 있다고 말한다. 추상 단칭 용어란 "삼각형triangularity"이나 "지혜wisdom," "인류mankind," "용기courage" 등의 표현들을 일컫는다. 실재론자는 보편자를 상정하지 않고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 어떻게 참이 될 수 있는지 설명하기 힘들다고 본다.

(1) 용기는 도덕적 덕이다Courage is a moral virtue.

(2) 삼각형은 모양이다Triangularity is a shape.

(3) 힐러리는 파란색보다 빨간색을 선호한다Hilary prefers red to blue.

(4) 인류는 한 종류다Mankind is a kind.

(5) 지혜는 철학적 삶의 목표다Wisdom is the goal of the philosophic life.

가령 (1)은 오직 용기라는 대상이 존재할 때에만 참이 될 수 있다. 주어에 대응하는 대상이 없는 데 어떻게 문장이 참이 될 수 있겠는가? 있지도 않는 것에 대해 그것이 무엇이라고 말한들 그 말은 참이 되지 않는다. 실재론자들은 이런 추상 단칭 용어의 지시체가 보편자라고 말한다. 이렇게 설명하지 않으면 위 문장들이 어떻게 참이 될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 외에도 추상 단칭 용어를 직접 사용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속성이나 종류, 관계의 지시체가 요청되는 듯한 문장들이 있다.

(6) 저 토마토와 저 소방차는 같은 색이다That tomato and that fire engine have the same color.

(7) 어떤 종들은 이종 교배가 가능하다Some species are cross fertile.

(8)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물리적 입자들 사이의 관계가 있다There are undiscovered relations tying physical particles to each other.

(9) 그는 그의 사촌과 품성이 같다He has the same character traits as his cousin.

(10) 저 모양은 여러 번 예화되었다That shape has been exemplified many times.

이 문장들도 참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보편자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특정 토마토와 소방차가 공통적으로 예화하는 속성,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물리적 입자들 사이의 관계 같은 것들이 보편자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문장들이 어떻게 참이 될 수 있을 것인지 상상하기 어렵다.


IV 형이상학적 실재론과 술어 분석

형이상학적 실재론, 즉 보편자가 존재한다는 입장은 술어가 어떤 것에 대해 참이거나 그것에 의해 충족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것을 표현하거나 함의할 수도 있다는 술어 분석과 독립적이다. 기실 형이상학적 실재론은 특정 술어 이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a is F"라는 문장을 "a exemplifies F-ness"로 고쳐 쓸 수 있다는 사실은 형이상학적 실재론을 지지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술어 분석이 형이상학적 실재론을 지지해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형이상학 실재론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a exemplifies F-ness"를 보고서 "F-ness"가 보편자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is F"라는 문장을 "exemplifies F-ness"로 고쳐 쓸 수 있다고 한들 형이상학 실재론이 더 그럴듯해 보일리 만무하다.


V 유명론과의 대립

앞에서 살펴본 실재론 옹호 논변은 반드시 대안 이론들과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위 논변은 어디까지나 주어-술어 문장이나 추상 단칭 용어를 포함한 문장들이 참이 되는 현상을 실재론이 잘 설명해줄 수 있고, 따라서 참이라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보편자를 상정하지 않고도 위 현상들을 잘 설명해주는 이론이 있다면 실재론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실제로 유명론nominalism을 지지하는 이들이 이런 식의 논지를 전개한다.


리뷰 텍스트

Michael Loux, Metaphysics: A Contemporary Introduction, 3rd ed. (New York: Routledge, 2006), pp.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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