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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주론으로서의 형이상학

동경 TOKYO 2017. 1. 7. 16:53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존재로서의 존재being qua being에 대한 연구, 혹은 근대 철학자들이 "일반 형이상학general metaphysics"라 부른 그것은 존재하는 것들의 범주categories에 대한 탐구가 된다. 범주, 존재하는 것들이 속하는 가장 포괄적인 종류. 그렇다면 형이상학자들은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을 하나 하나 짚어가며, 그것들을 이런 저런 범주에 집어 넣는 일을 하는 사람인가?

소크라테스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이고, 영장류이며, 동물이고, 생물이고, 실체다. 박근혜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이고, 영장류이며, 동물이고, 생물이고, 실체다. 적어도 이런 점에서 둘은 같은 범주에 속한다. 형이상학적 작업이란 이렇게 "X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던지는 작업인가?

범주론으로서의 형이상학을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몇 가지 이유로 문제적이다.

① 이런 이해에 따르면 형이상학은 매우 하잖은 학문이 된다. 그냥 이 질문만 계속해서 던지는 것이 형이상학인가? 이는 형이상학에 대한 상식적 견해에 들어맞지 않는다.

② 형이상학이 단순히 존재하는 것들을 분류하는 학문이라면 왜 형이상학들이 그토록 치열한 논쟁을 벌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은 단순히 "X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잘못 던졌기 때문에, 혹은 논쟁에서 사용되는 어휘들의 용법을 이해했기 때문에 논쟁을 벌인 것인가? 적어도 모든 이들이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고대부터 이어져 온 형이상학적 논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 범주론에 대한 위 같은 이해가 문제적인 까닭은 형이상학자들을 대상들의 총체totality of objects가 이미 주어진 상태에서 그것들을 분류하는 사람들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형이상학자들이 동의하는 대상들의 집합 같은 건 없다. 형이상학은 사전적으로 주어진 대상들의 집합을 상정하고 시작하지 않는다. 형이상학은 애초에 무엇이 존재하는지를 묻는다. "실체는, 혹은 실체라는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존재자들은, 존재하는가?" "사건은 존재하는가?" "보편자는 존재하는가?" 곧 형이상학 무엇이, 혹은 어떤 범주가 존재하느냐는 물음을 던지는 학문이 된다.


리뷰 텍스트

Michael J. Loux, Metaphysics: A Contemporary Introduction, 3rd ed. (New York: Routledge, 2006), pp.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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