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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자 유명론 III [메타언어적 유명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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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자 유명론 III [메타언어적 유명론]

동경 TOKYO 2017. 1. 26. 00:56

극단적 유명론austere nominalism은 얼핏 보편자에 대한 문장인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사실은 개별자에 대한 문장이며, 모두 개별자에 대한 것으로 보이는 문장들로 번역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체계적인 번역 지침을 마련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설명되어야 할 여러 형태의 문장들을 단일한 틀을 통해 통합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 존재론적으로는 단순했을지 모르나, 설명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던 것.

그러면 유명론은 존재론적 단순성을 취하는 대신 설명적 단순성을 포기해야 하나? 그건 곤란하다. 유명론 옹호 논변의 핵심은 유명론이 그 설명력의 측면에서 실재론이 비해 뒤쳐지지 않는데, 존재론적으로 더 단순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명론의 설명력이 떨어진다면 망했어요 이 논변은 힘을 얻기 어렵다. 이런 배경에서 메타언어적 유명론metalinguistic nominalism이 등장한다.

메타언어적 유명론에 따르면 추상적 지시체를 갖는 듯한 표현을 담고 있는 문장들은 기실 (극단적 유명론이 주장한 것처럼) 개별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언어에 대한 것이다. 실재론과 극단적 유명론은 모두 이런 문장들이 결국 非언어적 존재자들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문장들은 기실 언어에 관한 문장이라는 것. 그런 점에서 위 문장들은 모두 메타언어적이다. 메타언어적 유명론자들은 이 문장들이 기실 非언어적 대상들에 대해 말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적 표현들에 관한 것이며, 이 점을 명백하게 드러낼 수 있는 형태의 문장으로 번역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도 체계적으로.

보편자는 술어에 관한 언어적 활동으로서 설명되어야 한다는 이 생각은 매우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콩피에뉴의 로스켈리누스Roscelin of Compiègne, 아벨라르Abelard, 옥캄의 윌리엄William of Ockham 등이 이 사상의 뿌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보다 분명한 형태의 메타언어적 유명론은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등장하게 된다. 실재론자들이 보편자 개념을 가지고서 술어에 대한 분석을 제공한 반면, 메타언어적 유명론자들은 기본적으로 술어를 사용하는 언어 행위를 통해 보편자 개념을 설명 및 해소하고자 한다.


카르납[각주:1]

루돌프 카르납Rudolf Carnap은 추상 단칭 용어abstract singular terms를 포함한 문장들이 실은 언어적 표현에 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非언어적 존재자들에 대한 것인양 둔갑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령 삼각형triangularity라는 속성에 관한 것처럼 보이는 문장은 사실 "삼각형이다"라는 일반 용어, 곧 술어에 대한 문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1) 용기는 도덕적 덕이다Courage is a moral virtue.

(2) 삼각형은 모양이다Triangularity is a shape.

와 같은 문장들은

(1a) '용감하다'는 덕에 관한 술어다'Courage' is a virtue predicate.

(2a) '삼각형이다'는 모양에 관한 술어다'Triangular' is a shape predicate.

그런가 하면

(3) 용기는 속성이다Courage is a property.

(4) 아버지임은 관계다Paternity is a relation.

(5) 인류는 종이다Mankind is a kind.

와 같은 문장들은

(3a) '용감한'은 형용사다'Courageous' is an adjective.

(4a) '~의 아버지임'은 다항 술어다'Father of' is a many-place predicate.

(5a) '인류'는 집합명사다'Man' is a common noun.

와 같이 번역이 가능하다.

카르납의 입장은 매우 체계적인 번역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추상적 지시체를 갖는 듯한 표현들은 모두 언어적 표현으로 번역하면 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입장은 극단적 유명론에 비해 한층 진보한 것으로 보인다.


① 하지만 그가 보편자에 대한 지시를 완전히 제거한 것인지는 다소 불분명하다. (3)은 非언어적 보편자, 용기라는 속성을 지시하는 표현을 담고 있는 것 같다. (3)에 대한 번역 (3a)는 그 표현을 제거한다. 그 대신 '용감하다'는 일반 용어, 즉 술어를 얻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술어가 또 다른 종류의 보편자가 아니냐는 것이다. 우리는 "용감하다"는 표현을 말하기도 하고 쓰기도 한다.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발생하는 각각의 발화와 필기는 이 표현의 개별자 혹은 토큰token이다. 그런데 이 토큰들은 모두 한 단어의 토큰이다. 그 한 단어가 바로 (반복될 수 있는) 유형type으로서의 "용감하다"다. 그런데 토큰과 유형의 관계는 흡사 개별자와 보편자의 관계과 유사하다. 토큰은 그 유형을 예화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카르납은 보편자를 제거한 것이 아니다. 非언어적 보편자를 언어적 보편자로 대체했을 뿐.

② 또 다른 문제점은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의 번역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이다. 카르납에 따르면 한국어 문장 (1)을 발화하는 사람은 기실 한국어의 표현 '용감하다'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장 (1)의 영어 번역에 해당하는 문장 "Courage is a moral virtue"를 발화하는 사람은 영어의 표현 'Courageous'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용감하다'는 표현과 'Courageous'라는 표현은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한국어 문장 (1)와 그 영어 번역을 발화하는 사람들은 각각 전혀 다른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된다. 그러면 애초에 그 두 문장은 서로에 대한 번역이 아니라고 보아야 하지 않는가?


셀라스

윌프리드 셀라스Wilfred Sellars 가 이들 두 가지 문제를 극복하는 대안을 제시한다.

① 메타언어적 유명론이 유형 혹은 보편자로서 이해된 언어적 표현의 존재를 상정할 필요는 없다. 셀라스는 "용감하다courageous"나 "삼각형이다triangular" 같은 술어들은 기실 토큰 술어들을 통칭하는 분배적 단칭 용어distributive singular terms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용감하다"와 "삼각학이다"는 유형으로서의 언어 표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토큰으로서의 여러 개별 표현들을 지칭한다는 것. 가령

(6) 사자는 누르스름하다The lion is tawny.

(7) 미국 시민은 발언의 자유를 갖는다The American citizen has freedom of speech.

집합 명사common noun을 담고 있는 이 문장들은 결코 사자와 미국 시민의 보편자에 대한 문장이 아니다. 모든 개별 사자와 모든 개별 미국 시민에 대한 문장이다. 추상적 단칭 용어들도 마찬가지로 보편자가 아니라 그 표현의 토큰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내 공책에 적힌 "용감하다"와 당신이 어제 내뱉은 "용감하다" 등을 모두 가리킨다는 것.

그렇다면 카르납의 번역도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야 한다.

(1b) '용감하다'는 표현들은 덕에 관한 술어들다'Courageous's are virtue predicates.

(2b) '삼각형이다'는 표현들은 모양에 관한 술어들다'Triangular's are shape predicates.


(3b) '용감한'이란 표현들은 형용사들이다'Courageous's is adjectives.

(5b) '인류'란 표현들은 집합명사들다'Man' is common nouns.


② 보통 우리는 언어적 표현을 가리킬 때 작은 따옴표를 사용한다. 적어도 어떤 한 언어에 속한 단어를 사용할 때는. 하지만 메타언어적 유명론이 이렇게 특정 언어에 구속될 필요는 없다. 여러 다른 언어들은 각각 같은 기능function을 가진 표현들을 갖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언어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표현들을 가리킬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든, 'Man'이든, 'Mensch'든, 'Homme'든 같은 갖는다면 이것들을 한 꺼번에 지칭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셀라스는 작은 따옴표 대신 점표dot을 이용하자고 제안한다. 말하자면 위 단어들을 일일히 쓰는 대신 ·사람·을 사용하자는 말. 카르납이 피하지 못한 번역의 문제를 벗어나려면 위 문장들을·

(1c) ·용감하다·는 표현들은 덕에 관한 술어들다·Courageous·s are virtue predicates.

(2c) ·삼각형이다·는 표현들은 모양에 관한 술어들다·Triangular·s are shape predicates.


(3c) '용감한'이란 표현들은 형용사들이다·Courageous·s is adjectives.

(5c) '인류'란 표현들은 집합명사들다·Man· is common nouns.

카르납의 번역은 오로지 영어 단어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셀라스의 번역은 기능적으로 동등한 여러 언어들의 단어들에 관한 것이다. 물론 셀라스의 번역 방식은 카르납의 그것 만큼이나 체계적이다.


물론 메타언어적 유명론에 대한 반론들도 많다. 혹자는 보편자를 지칭하는 듯 보이는 표현을 담고 있는데, 셀라스의 방식대로 번역이 불가능한 문장들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개별 문장의 번역 불가능서이 아니라 그의 이론 전반에 대한 비판도 있다. 셀라스는 非언어적이든 언어적이든 보편자를 지시하는 듯한 표현들을 제거하고자 한다. 문제는 그가 이것들을 제거하는 과정에 또 다른 종류의 보편자를 들여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는 얼핏 보편자 F-ness에 관한 듯한 문장이 실제로는 언어 표현 ·F·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토큰 ·F·를, 그러니까 모든 ·F·의 발화와 필기들을, 토큰 ·F·로 만들어주는가? 특정한 언어적 역할linguistic roles이 아닌가? 여러 다른 언어에서 영어의 'Man'이 수행하는 것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표현의 토큰들은 죄다 유사한 것은 그것들이 각각 어떤 보편자, 특정 언어적 역할에 대응하는 보편자를 예화하기 때문이 아닌가?

셀라스는 물론 이에 반대할 것이다. 그가 보기에 언어적 역할이란 존재자가 아니라 그저 발화 방식façon de parler, 각종 언어적 규칙rules들에 관한 복잡한 사실들을 요약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셀라스는 토큰 언어 표현들이 존재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언어가 아니라 말하고 쓰는 인간들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메타언어적 유명론은 기실 "언어에 대한" 이론이 아니다. 언어적 표현이란 없다. 다만 특정한 방식에 따라 말하고 쓰는 사람이 있을 뿐. 언어적 역할은 존재자가 아니라 규칙의 묶음일 뿐이다. 그리고 언어적 규칙은 개별자 이외의 다른 것을 참고하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다. 여전히 셀라스의 설명을 납득하지 못하는 이들은 언어적 규칙이라는 개념은 결국 규범norms을 요청하는 것이며, 규범은 결코 보편자 없이 이해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겠지만.

  1. Rudolf Carnap, 『The Logical Syntax of Language』 (Paterson, NJ: Littlefield, 1959), pp. 284-31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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